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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불교. 유교, 기독교, 기타교,,,

불교, Buddhism, 佛敎.3

불교, Buddhism, 佛敎.3

기원전 5세기경 인도에 나온 샤카무니, 즉 석가에 의해서 제창된 가르침으로, 그리스도교이슬람과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 현재 

①스리랑카, 태국 등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②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여러 나라, 

③티베트, 몽고 등의 내륙아시아 여러 지역 등을 중심으로 약 5억 명의 교도를 가지는 것 외에, 미국이나 유럽에도 교도나 사상적 공명자가 있다. 

기원전 3세기에 전도된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퍼진 남전불교(남방불교)로, 팔리어불전을 이용하는 상좌부 불교, 

인도 북서부에서 서역(중앙 아시아)을 거쳐서 퍼진 북전불교로, 한역불전을 기본으로 하는 대승불교

후기에 네팔 등을 거쳐서 전해진 대승불교로, 티베트어역의 불전을 이용하는 등 이들 여러 지역의 불교는 역사와 전통을 달리하고, 교의나 교단의 형태도 다양한데, 모두 교조 석가를 불타(불)로서 숭배하고, 그 가르침(법)을 듣고 선정 등의 일천수행에 의해서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발상지 인도에서는 13세기에 교단이 파괴되고, 네팔 등의 주변지역을 제외하고 소멸했는데, 현대에 들어와서 신불교도라고 하는 종교사회운동이 일어나서 부활했다. 또한 서구의 종교활동은 일본에서 전해진 선(), 스리랑카의 대보리회 및 티베트인 민중에 의한 것이 주된 것이다.

교조 & 석가

석가는 히말라야 산록의 카필라바스투를 수도로 하는 석가족의 왕자로서 태어났는데, 29세 때, 인생의 고뇌로부터의 해탈을 구해서 출가하고, 6년 고행 후, 35세에 마가다국 가야성 교외(현재 보드가야)에서 보리수 밑에서 선정에 들어가고, 고뇌가 일어나는 원인과, 극복에 관한 연기의 이치를 깨달아 불타(<깨달은 자>라는 뜻)가 되었다

(성도()). 그후 바라나시 교외의 사르나트(녹야원())에서 원래 수행 동료였던 5명의 수행자를 상대로 자신이 깨달은 진리(법)를 설명하여 제자로 하였다(초전법륜()). 이로써 불(교주)ㆍ법(불의 가르침)ㆍ승(상가, 즉 제자들의 집단)의 삼보()가 갖추어져 불교가 성립했다. 

이후 250명의 제자를 데리고 샤리프트라(사리불)와 마하마우드가리야야나(대목건련, 목련이라고도 한다), 1000명의 제자를 가진 카사파(가섭()) 3형제 등이 입문하고, 또한 고향에서 석가족의 사람들을 입신시키는 등, 이로써 교단이 확립되었다. 

교화범위는 마가다국의 수도 라자그리하(왕사성)와 코살라국의 수도 시라바스티(사위성)를 두 개의 중심으로 하는 간가(갠지스)강 중류역의 지방으로(이를 불교의<중국>이라고 한다), 주로 국왕이나 도시의 대상인 사이에 지지자를 얻었다. 

석가는 이렇게 해서 45년간, 교화에 노력한 후, 80세에 쿠시나가라의 땅에서 사거했는데 이를 입멸(반열반)이라고한다. 유해는 신자들의 손으로 화장되고, 유골은 신자들이 나누어서 탑(스투파, 사리탑, 불탑)에 제사지냈다. 

제자들은 최장로인 마하카사파(마하가섭)를 중심으로 모여서 회의를 열어서, 석가의 유언에 따라서, 생전에 설교한 가르침(법)과 제정된 교단의 규칙(율)을 편집해서 입멸 후의 기준으로 하여 교단의 결속을 도모하였는데 이를 결집()이라고 한다. 

석가의 탄생ㆍ성도ㆍ초전법륜ㆍ입멸은 불전 중에서 4대 사적이라고 하며, 그 기념의 땅, 즉, 카필라바스투 교외의 룸비니원,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 바라나시 교외의 녹야원, 그리고 쿠시나가라는 성지로서 후세, 신도의 순례지가 되었다. 석가의 생존연대에 대해서 학계에서는 기원전 6~기원전 5세기설과, 기원 5~기원 4세기 설이 있는데 전자는 남전, 후자는 북전의 자료에 의거한 계산으로 어느 것이 정부인지를 판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종교의 특색

석가재세시의 인도에서는 정통파 종교가인 브라만과 함께 사문이라고 하는 다양한 종교가, 사상가가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구해서 수행하고, 그 길을 주장했다. 

석가 또한 출가유행하여 걸식에 의해서 생활하는 사문의 길을 선택하고, 수행방법으로서는 신심을 고행하고 단련해서 초능력을 얻는 고행 대신에, 정신 통일, 안정에 의해서 진리를 직관하는 선정(요가와 동일)을 채용했다. 진리의 직관이라는 것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것, 즉 깨달음으로, 그로써 생사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고통의 멸, 열반이라고 하는 궁극의 목표이다. 

석가의 방법은 한편으로 자연적 욕망에 몸을 맡기는 쾌락주의를 부정하고, 한편, 고행을 버리는 점에서 고락의 양 극단을 벗어난 중도라고 한다. 또한 석가는 인생문제의 해결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형이상학적 문제(가령 세계의 유한ㆍ무한이라든지, 창조인이라든지)에 대해서는 질문을 받아도 대답하지 않아(무기()) 판단을 중지하고 있다. 이 점에서 석가는 실무적이며 자신의 입장을 병에 따라서 약을 주는 의사로 비유하고 있다. 즉, 고뇌를 관찰해서 그 유래하는 바를 응시해서 이것을 단정하고, 그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한다.

이는 

①고통, 

②고통을 모으는 것(원인), 

③고통의 멸, 

④고통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네 가지의 항목(사제)으로 정리되어 불교의 기본으로 하였다. 

이 지적ㆍ합리적 방법에 의해서, 불교에서는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직접적인 목표가 이행되고, 깨달음의 완성자인 부타(불타, 불, 각자)가 그 이상상이 되었다. 동시에 진리만이 영원불변의 절대적 가치이며, 석가는 단지 그것을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그에 이르는 길을 가르친 중개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서 깨닫는 자가 되기 위해서 수행한다. 진리가 절대이며, 불타를 통해서 개현한다는 것은 진리가 그리스도교 등의 <신>의 지위에 대신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중개자, 교주로서의 불타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지만, 깨닫는 자가 되는 길이 만인에게 열려 있다는 것은 절대자가 비인격적인 진리라는 점과 함께 불교의 특색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석가가 깨달은 진리를 불교에서는 다르마(법)라고 하며, 불의 가르침은 그 진리를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다르마, 또는 법이라고 한다. 이상은 석가의 종교의 특색인데, 석가입멸 후, 사정은 조금 변화했다. 

첫 번째는 교조 불타, 즉 석가의 신격화(초인화)이다. 

불타(불)에 대한 숭배는 원래 재가의 신자 사이에 강했는데, 입멸 후에는 불탑을 제사지내는 것을 통해서 고양되었다. 이런 경향은 후에 불탑을 중심으로 하는 재가신자의 운동을 출발점으로 하는 대승불교를 낳았다. 거기에서는 과거불이나 미래불과 함께 이 세계의 주위 시방에 무수한 제불()과 그 세계(불국토, 정토)의 존재를 인정했다. 그들 제불은 중생제도의 서원으로 수행해서 불이 되며, 그 서약대로 중생을 구원하고자 그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서 숭배되었다(예를 들어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 그러나 그 경우에도 법(진리)의 절대성은 잃지 않고, 불은 진리의 체현자(여래, 즉 여 = 진리에 내재하고, 또한 여에서 내지하는 자)로 되어 있다. 

불의 본질은 법 그 자체로(법신), 제불은 그 구체적 현현이다(색신). 수행의 목표로서의 깨달음을 절대자인 법과의 합일에서 구하는것은 브라만 정통파의 베단타 학파가 주장하는 <범아일여>와도 공통되는 신비주의인데, 특히 이는 후기에 발달한 밀교에서 현저하다. 

불교는 인도 외의 여러 지역에 발달함에 따라서 각 지역, 민족의 신앙이나 의례 등과 습합하고, 그들을 불도의 방편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상당히 크게 변질했다. 이 중 하나는 힌두교와도 공통되는 인도사상의 종교적 관용성에 의하는데, 불교가 본질적으로 비인격적인 진리를 절대시하고, 만상에 그 구현을 발견하는 범신론적 종교라는 것에도 유래한다.

기본적인 교리

석가가 깨달아서 사람에게 설교한 법(진리=가르침)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불교 교리의 기본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사구로 요약된다(이를 일반적으로 사법인이라고 한다. 때로는<일체개고>를 제외해서 삼법인이라고도 한다). 이중 앞의 3구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세계의 모든 현상에 관한 진리로, 

①모든 현상은 무상하며 변화를 계속해서, 

②따라서 고통을 가져온다(가령 최대의 고통으로 죽음. 죽음은 무상의 대표), 

③모든 현상은 모든 자아도 자기의 소유물도 아니며, 따라서 자유롭게 될 수 없다. 

고뇌는 실은 자유롭게 되지 않는 것, 무상한 것을 나의 것으로 생각, 집착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무아>에 대해서 후에는 무상과 직접 결부시켜서 영원불변한 실체(=아)가 없다고 해석되어, <공(내용이 없는 것)>과 동의어가 되었다(무아설). 이론적으로는 무상이며, 무아인 것이 사물의 진실한 모습으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고뇌가 발생하게 된다(깨닫게 되면 고뇌는 없어지지만 무상이며, 무아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 고뇌의 소멸이 제4구의 <열반적정>이 나타내는 바로, 열반은 구체적으로는 고뇌를 일으키는 근원인 욕망, 집착의 불꽃이 진화해서 적정, 청량한 상태로 설명된다.

같은 내용을 조직적으로 주장한 것이 앞에서 언급한 <사제()>이다(제는 진실, 진리라는 뜻). 교리상의 설명을 가하면, 

①고제() : 인생에는 생로병사()의 4고() 외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증오하는 자와의 만남,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이 몸은 무상한 여러 요소(오온-육체(색())와 감각(수()), 표상(상()), 의사(행()), 인식(식)의 여러 심리작용)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합계 8종의 고뇌가 존재한다. 

②집제() : 이 고뇌를 모아서 일으키는 것, 즉 고뇌의 원인으로서는 번뇌로 총칭되는 마음의 부정(탐욕, 증오, 무지 등)이 있다. 무지라는 것은 무상, 무아의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무명)으로, 때로는 이것을 악의 근원으로 본다. 욕망이나 집착은 모두 이 무지의 결과로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③멸제() : 고뇌의 소멸, 열반적정이 이상인 것. 이는 무지가 없어졌을 때, 즉 진실을 알았을 때, 깨달았을 때에 실현한다. 

④도제() : 고뇌의 소멸을 달성하기 위해서 실천해야 할 올바른 길로 8항이 있는데(팔정도) 즉, ⓐ올바르게 사물을 보는 방법(정견()), ⓑ올바른 마음을 가지는 방법(정사()), ⓒ올바른 말의 사용(정어()), ⓓ올바른 행동 - 불살생, 불투도 등의 계율을 지킨다(정업()). ⓔ올바른 생활(정명()), ⓕ올바른 노력정진(정정진()), ⓖ올바른 가르침을 생각한다(정념()). ⓗ올바른 선정의 습득(정정()) 등이다.

이상의 사제는 고인()→고(), 도의 실천에 의한 고인()의 멸→고의 멸이라는 2종류의 서로 상반되는 방향의 인과관계를 포함한다. 전자는 방황이 발생하는 방향의 인과이며, 후자는 깨달음에 이르는 인과이다. 이 인과관계가 널리 <연기>라는 이()로, 라는 형식이 된다. 이를 고인()→고라는 시점에서 구체적으로 주장한 것이 12지로 된 연기(12인연)로, 그 차례는, 

①무명(, 근원적 무지)→②행(, 몸ㆍ입ㆍ의에 의한 3업)→③식(, 마음. 분별적인 인식)→④명색(, 정신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 인식의 대상)→⑤육입(,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의의 육종의 감관)→⑥촉(, 인식, 감관, 대상의 접촉)→⑦수(, 고락 등의 감수)→⑧사랑(갈애ㆍ본능적 욕망)→⑨취(, 집착. 물, 물질의 견해, 잘못된 행위궤범, 자아에 대한 고집)→⑩유(,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의 생존상태. 개략적으로 말하면 윤회의 세계)→⑪생()→⑫노사() 등의 고뇌의 집적으로 되어 있다. 

석가는 이 무명에서 순차적으로 생ㆍ노사가 생기하는 절차와, 무명이 소멸하면 순차적으로 노사에 이르기까지가 소멸하는 절차라는 양 방향에 걸쳐서 연기를 관찰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연기설은 업설(업은 몸ㆍ입ㆍ뜻(신ㆍ구ㆍ의)의 3업인데, 그것이 깨달음을 얻는 힘을 중시한다. 윤회를 일으키는 것은 업의 힘인데, 그 업은 무지 등의 번뇌에 의거하고 있다고 보는 설)과 결합되고, 12지를 3세에 걸친 이중의 혹()ㆍ업()ㆍ고()의 관계로서 설명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연기를 널리 모든 현상의 사이에서 각종 관계의 이론으로 해설하는 입장도 생겼는데 그 경우 인과를 성립시키는 조건으로서, 모든 현상에 어떤 형태로 원인을 낳는 힘이 있다고 보고, 이를 <행>(산스카라(saskāra))이라고 하며, 그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을 <유위법(, 산스크리타 다르마 ; saskta-dharma)>이라고 하였다(여기에서 <법>이라는 것은 일정한 성질을 가진 현상의 뜻). 

모든 유위법은 동시에 인()이 되어서 다른 현상을 낳는 힘을 가진다고 생각했다(즉 <제행>=<제유위법>). 그리고 그들의 행=유위법은 찰라마다 발생해서 소멸한다고 생각, 그것이 무상이라는 것의 의미가 되었다. 가령, 개인 존재(아) 등도, 오온이 심(식)을 중심으로 찰라 생명을 반복하면서 일정기간 상속하는 것(심상 속)이라고 설명했으며 그것이 <무아>의 의미라고 해석하였다. 

이들 유위법에 대해서, 이론상 생멸이 없는 존재로서 공간(허공) 등이 상정되는데, 종교적 요청인 열반 또한 생명을 초월한 상주의 것으로 보았으며 이들을 유위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무위법(, 아산스크리타 다르마)이라고 부른다. 단, 이도 결코 일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위법과 마찬가지로 무위법도 또한 무아이다(제법 무아의 제법은 유위법과 무위법도 포함한다고 해석한다). 유위법과 무위법을 합쳐서 <일체법>이 되는데, 법(다르마)은 달리 분류하면 5온(), 12처, 18계()로 이루어진다고 하며, 상호의 포괄관계가 정해졌다. 이런 이론화ㆍ조직화는 아비다르마(법의 연구)의 이름으로 정리되었다.

연기설의 이해를 둘러싸고 불교 내에 각종 학설이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것으로서는 ①일정한 성질을 가지고 실재하는 여러 법들의 상호관계를 연기로 보는 설일체유부의 학설과, 

②이에 반대해서, 여러 법이 그 자체를 가지지 않고(무자성), 공()이라는 것이 연기의 의의라는 대승(중관파)의 입장이 있다. 

동일한 대승 중에서도 유식설에서는 여러 법도 자아(아)도 관념적 존재(가)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들을 실유()로 보는 미망의 세계가 사실로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나타내는 근거로서 우리들의 인식구조(식)가 과거 무수한 제업에 의해서 연기한 것이며, 따라서 실유한다고 주장했다(단, 실유한다고 해도 연기한 것이기 때문에 유위법이며, 찰라멸이며, 공이며, 또한 가치적으로는 미망의 존재이기 때문에 부정되어야 한다. 

부정을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시키는 의미에서, 깨달음에 있어서 불가결한 의거(토대)라고 설명된다). 유식설에서는 또한 모든 것이 연기한 것이라는 진리, 공이란 것(공성), 식만이라는 것(유식설) 등을 진여, 법계의 이름으로 실유라고 하였으며 불 또한 진여와 일체가 된 것, 법신으로서 실유이다. 이 실유는 영원불멸의 진리로서 절대적인 것, 도달해야 할 종교상의 목표라는 2점을 포함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교리를 아는 것이 실천의 목표인 깨달음(보리)이다. 따라서 깨달음은 사제를 현관하는, 제법 무아의 이치를 안다, 연기ㆍ공성을 본다, 유식한 것에 들어가는 등, 교리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진실을 본다, 또는 여실히 지견하는 것이다. 이 아는 작용을 지() 또는 혜()라고 하며, 반야라고한다. 이는 통상의 분별적 인식과는 달리 무분별한 직관이다. 

이 반야를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그 전단계로서 수행이 요구되는데 수행의 기본은 팔정도()로 그 존재방식은 중도라고 하였는데, 구체적으로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덕목을 들 수 있으며, 그들을 합쳐서 37각지(), 즉 37종의 보리를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도 한다.

그들을 정리하면 계()ㆍ정()ㆍ혜()의 3학으로 정리된다. 계()의 기본은 <제악막작(), 제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제악을 범하지 말라, 제선을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정결히 하라, 이는 제불의 가르침이다)>라고 나타내며, 계를 지키는 것은 입문의 조건, 수행의 전제이다. 

정()에는 사선(), 사무색정(), 멸진정()이라는 각종 단계가 있으며, 그 외에도 각종 삼매가 주장되며 선정 중의 혜()의 작용에 의해서 억념하고 관찰하는 염(), 관()이라는 수행법도 있다. 즉 선정은 수행 그 자체라고 해도 좋으며, 그에는 항상 혜가 수반하는데 정과 혜를 합쳐서 지관()이라고도 한다. 

대승에서는 실천을 육바라밀로 정리한다. 바라밀이라는 것은 완성된 존재방식 또는 이상세계(피안)로 건너가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6종의 행으로, 그 모든 것이 반야에 의거할 때 바라밀이라고 한다. 3학에 비해서 보시라는 이타행()이 부가되는 것이 특색으로, 이는 육바라밀이 원래 불의전신(성도 이전)인 보살의 행으로, 중생제도가 목적인 것에 의한다.

수행에는 또한 수행자의 근기(능력, 성질) 등에 따라서 난이나 단계의 구별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선정의 수행에 의해서 깨닫는 것은 난행이기 때문에, 근기의 열등한 것은 신에 의하는 것을 권하는데, 대승에서는 불의 자비력으로 신만으로도 구제된다고 가르치며 수행자는 수행의 단계에 따라서 범부와 성인으로 나뉘어진다. 성인은 준비적 수행(가행)을 끝내고 사제의 이치를 보고 견도()에 이른 것 이상으로, 그후 궁극적 완성까지 수행을 계속하는 것이 요청되는데 이 단계를 수도()라고 하며 수행의 완성자는 아라한(나한)이라고 한다. 

아라한은 원래 불의 이칭으로, 공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라는 뜻인데, 전통적 부파불교에서는 제자들의 완성위의 이름으로써 불()과는 구별되었다. 거기에서는 불이 되는 불보살의 길과 독학으로 깨닫는 독각의 길과 아라한이되는 제자의 길이 삼승()의 이름으로 구별된다. 이에 대해서 대승불교에서는 불이 되는 보살의 길을 만인에게 가능하다고 하고, 대승(큰 탈 것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자인했다. 누구라도 불과 동일한 깨달음으로 향해서 발심하면 보살이다. 보살에도 또한 범성()이 구별되는데, 완성된 학설은 십지(10종의 보살의 계제)의 초지 이상의 것을 성인이라고 한다.

조직과 규칙

교단을 의미하는 상가(승가, 승)는 공동체라는 뜻으로, 성원의 화합을 취지로 한다. 상가는 종교단체 외에 장인의 길드, 공화정체도 가리켜서 이용되는 용어로, 성원이 자신들이 규칙을 만드는, 성원 상호간 평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 등이 예상된다. 불교에서 출가한 수행자는 출신의 가문이나 계급(바르나)을 불문하고(사성평등), 동등하게 사문석자()라고 하는 자로서, 여러 천이 대해로 들어가서 일미가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교단의 성원은 넓은 의미로는 비구(남성 수행자), 비구니(여성 수행자), 우바새(남성 재가신자), 우바이(여성 재가신자)의 사중으로 이루어지는데, 재가신자에 대해서는 입신시에, 불법승의 삼보로의 귀의와 오계의 준수를 서약시키는 것 외에 특별히 결정된 것은 없다. 이에 대해서 수행자는 입문시에 구족계를 받은 이후, 단체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각종 규제를 받고, 또한 범계하면 벌칙을 받았는데 이런 교단의 규제를 율(계율)이라고 한다. 

율은 계본과 위반에 대한 벌칙을 정하는 부문과, 교단 운영에 따른 여러 규칙을 든 부문으로 이루어지는데 전자는 250계를 벌칙의 경중에 의해서 5종 또는 8종으로 나누며, 그중 가장 무거운 죄는 바라이()죄로, 살생, 강도, 간음, 대망언(깨닫지 않았는데 깨달았다고 한 거짓말을 범한 것에 대해서 부여되며, 범계자는 교단에서 추방된다. 기타는 경중은 있어도 모두 참회에 의해서 용서된다.

계의 조항은 비구에서 250, 비구니에서는 348이라고 하는데(부파에 따라서 다르다), 원래는 수범()규제라고 하여서, 그 행위가 문제로서 거론됨에 따라서 점차로 증가했다고 한다(초범은 규정 이전이기 때문에 벌하지 않는다). 후자, 교단운영의 규칙류에는 회의 운영의 존재방식이나 출가수계작법이나 기타 포살(일정한 날에 평소의 행위를 참회한다), 안거(, 매년 우기에 전원 모여서 수행한다) 등의 행사 규정, 수행자의 생활 도구로서의 사의(옷은 분소의, 식사용의 그릇, 주거는 나무 밑 돌 위, 약은 진기약에 의한다)의 규정 등이 있다. 

회의 운영은 전원일치를 취지로 하고, 그 때문에 회의의 종류에 따라서 사람수를 정하고, 그때마다 상가의 인원수를 확인했는데(가령, 입문을 위한 수계의식에는 10명 이상의 성인 수행자의 출석을 필요로 하는 등) 이 일에 따른 상가의 구성을 현전승가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 모든 불교도(수행자)의 교단을 사방승가라고 한다(사방승가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의 차투르디샤를 음사한 초제()라는 말은 당초제사()라는 이름에 남아 있다). 율은 부파마다 내용상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대승에는 계는 있어도 율은 없다. 이는 대승이 원래 재가신자의 집단에서 일어난 것과 관련된다.

한국

한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나 공식적으로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의 왕 부견()이 사자(使)와 승(순도()를 파견하면서 불상과 경문을 보낸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부견이 외국에 불상을 보냈다는 기록은 『고승전()』에도 있다. 이어 백제 침류왕() 1년(384)에 진()나라에서 온 호승() 마라난타()의 예경()을 받았다. 

신라에는 법흥왕() 15년(528)에 고구려에서 전해졌다. 그러나 신라에 불교가 전해진 데 대한 설은 많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지기 이전인 미추왕() 2년(263) 설, 눌지왕() 시대에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왔다는 설 등이다. 고구려는 불교가 전해지자 바로 성문사()와 이불란사()를 짓고 불교를 공인하였다. 

평양에 9사()를 창건하고(393) 반룡사 영탑()을 세우기도 하여 불교가 널리 퍼졌고, 광개토대왕 때에는 위()나라 담시()가 경률() 수십 권을 전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소수림왕의 동생인 고국양왕() 9년(392)에는 <불법을 믿고 복을 구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에 전한다. 아울러 고구려 불교는 승랑()의 공사상() 연구를 비롯하여 혜관()ㆍ혜자()ㆍ의연()ㆍ보덕()등 많은 고승을 배출했다. 

백제는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한 이듬해에 한산( ; )에 절을 짓고 10명의 승려를 두어 포교토록 했고, 성왕() 30년(552)에는 불상ㆍ불경 등을 일본에 전했는데 이것이 일본 불교의 시작이다.

일본에서는 이보다 앞선 성왕 16년(538)으로 보는 설도 있다.

백제 역시 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특히 겸익() 등은 인도에 가서 계율을 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삼국 중 불교가 가장 융성했던 곳은 역시 신라이다. 이차돈()의 순교 이후 국교로서 왕의 보호 아래 경세제민()의 가르침으로 확정되었으며, 진흥왕() 때에는 진골() 중에서 출가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더구나 많은 절을 건립하여 그 교세는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진흥왕 26년(565)에는 명관()이 진()으로부터 경론() 1,700여 권을 가지고 돌아옴으로써 학문적 연구도 활발해졌으며, 수ㆍ당으로 유학하는 승려도 많았다. 

원광()은 이는 진()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서 출가하여 포교하다가 다시 수()에 유학하기도 했는데, 진평왕() 30년(608)에는 수나라에 걸사표()를 보내 30만 대군을 얻어 고구려를 치게 했으며, 세속오계()를 짓기도 한 학승()이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로 불교는 더욱 융성하여 화엄학()에 원효()ㆍ의상() 유식()에 원측(), 계율()에 정롱했던 자장(), 밀교()를 전한 혜통() 등, 쟁쟁한 고승()이 많이 나왔다. 따라서 이들의 저술도 상당하였으며, 이 시대의 신라 불교는 중국 불교에서 완전히 독립한 교학을 수립했다고 할 수 있다.

조금 후대에 이르면 유식에 정통한 대현(), 화엄을 연구한 승전() 등의 학승이 있다. 이처럼 한국 불교의 교학은 중국을 능가하는 고도의 사상체계를 확립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혜자는 일본에 건너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어 태자의 섭정()을 도왔고, 백제의 혜총() 역시 쇼토쿠 태자의 섭정을 도와, 일본 불교의 기초를 다지는 등 고도의 불교사상을 일본에 전할 만큼 교학이 발전하였다. 

고구려의 혜관, 백제의 관륵() 등은 삼론철학()과 같은 고도의 불교사상을 일본에 전했다. 

신라 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은 통일신라 때 중국의 선()을 받아들여 구산문()이라 일컫는 9개의 산문을 개산()하고 크게 선풍()을 일으킨 점이다. 

불교문화도 크게 진흥하여 불국사ㆍ석굴암과 같은 걸작을 남겼다. 신라 말기에 이르러서는 왕이 불교를 맹신하여 너무 많은 불사()를 일으켜 그 폐해가 컸다. 고려도 신라에 못지않은 찬란한 불교문화를 이룩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매우 독실한 불교 신도였으므로 역대 왕들이 모두 태조의 뜻을 따랐으며, 특히 두 차례에 걸쳐 대장경()을 간행했다. 초조()는 고려 성종() 10년(991)에 한언공()이 송()나라에서 가지고 온 개보판()을 저본()으로 삼아 현종() 때부터 문종()에 걸쳐 완성했으나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고 말았다. 제2차는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총 1,511부 6,802권이며 경판()으로는 8만 1,258판이 지금 해인사 장경판고()에 보존되어 있다. 이렇듯 왕가의 불심이 돈독하여 문종의 아들 의천()과 같은 대학승이 나왔으며 의천문하에는 항상 1,000여명의 학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무렵부터 지눌() 때까지는 고려 불교의 황금시대였다. 

지눌은 화엄과 선에 통달했는데, 그의 저서 『수심결()』은 유명하다. 

고려 불교는 선 •교()가 병존했으나 특히 선종 쪽에 많은 고승이 있었다. 지눌 문하의 승형()ㆍ혜심() 등이 그 대표라 할 수 있다. 원종(, 재위 1259~1274) 때 원()나라의 속국이 되면서 국력이 쇠퇴하자 불교도 차츰 그 빛을 잃게 되었고, 때마침 수입된 주자학()의 영향으로 배불()의 기운이 돌기 시작하였다.

고려에 이어 건국된 조선 왕조에서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교가 심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태조ㆍ세종()ㆍ세조() 등은 적극적으로 불교를 보호하고, 호국불교()에 힘쓰기도 하였다. 

세종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을 저술케 하기도 했으며, 많은 경전의 언해본()을 간행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많은 고승이 나왔다. 

무학()을 비롯하여 함허()ㆍ보우()ㆍ서산(西)ㆍ사명() 등이 대표적인 고승이다. 

임진왜란 때는 승군()이 크게 활약하여 호국불교의 진면목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국권 침탈기에는 총독부의 이른바 사찰령()에 따라 31개 본사()와 1,200여 말사()가 일제의 관권하에 있었다. 

만해()ㆍ용성() 등 일제에 항거한 애국적인 승려도 있었다. 

8ㆍ15 광복으로 국권이 회복되자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여 일제의 잔재를 일소하는 한편, 가장 오래된 법맥을 이은 조계종을 중심으로 여러 종파가 체제를 정비하게 되었다. 

제1공화국 때 이승만 대통령의 불교계 정화 지시에 따라 비구승()과 대처승()간의 이전투구()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1962년 불교재산관리법()이 발효되자, 

조계종은 교구제를 재정비하여 지방에 25개 교구본사()를 두고, 중앙에는 총무원ㆍ중앙종회()ㆍ감찰원()ㆍ포교원()을 두어 현대적 불교의 포교와 역경(), 인재양성에 힘쓰고 있다.

불교 재단에서 설립한 종립학교()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으로 조계종 종립학교인 동국대학교가 있고 그 밖에 초등학교, 중ㆍ고등학교도 상당수가 있다. 

90년 5월 1일 개국된 불교방송(BBS)은 <깨침의 소리, 나누는 기쁨>을 방송지침으로 삼아 전파를 통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인도

부파불교

불교의 교단은 석가 입멸 후 100년 정도는 통일을 유지했는데, 그후 보수적인 상층부와 진보적 개혁파 대중사이에서 대립이 생겨서 분열하고, 각각 상좌부와 대중부가 되었다. 

그 원인에 대해서, 북전불교에서는 수행 완성자의 존재방식을 둘러싼 견해의 상위로 보고, 남전불교에서는 소금이나 금전의 보유 등을 둘러싼 계율조항의 싸움으로 돌렸다. 

분열은 그후 더욱 양 부파 내부에 미치고, 이후 200~300년 사이에 18의 부파로 나누어지고 근본 2부와 합쳐서 20부파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분열의 연대에 대해서는 기준이 되는 석가의 연대에 이론이 많기 때문에 확정할 수 없다. 

교단의 분열은 불교 발전의 결과로 생각하면, 기원전 3세기 아소카왕 치하의 마우리아조 시대가 그에 적합하다. 

가령 스리랑카의 상좌부는 아소카의 왕자 마힌다에 의한 전도로 전해지는데, 그 근거지는 서인도의 교단이었다고 생각된다(단, 아소카의 비문에는 분열을 계율하는 기사는 있지만 부파명 등은 전혀 들고 있지 않다).

불교사에서는 상좌, 대중 2부로의 근본분열 이후를 부파불교 시대라고 하며 또한 부파마다 교리의 연구(아비다르마)를 다투었기 때문에 아비다르마 불교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 분열 이전을 초기 불교 또는 원시불교라고 한다. 

주된 부파로서는 상좌부 계통으로 북인도에서 세력을 뻗쳤던 설일체유부(약칭 유부), 화지부, 법장부 등, 서인도에 세력을 가진 속자부 등이 있으며, 유부에서 다시 경량부가 분출했다. 

속자부에서도 정량부 등이 분출했는데, 정량부는 후세(현장이 체재한 7세기경) 중인도에 진출해서 큰 세력을 가졌다. 

그 외에 설산부가 있으며, 근본 상자부를 자칭하고 있다. 대중부도 또한 많은 부파로 나뉘어졌는데, 북인도에 있었던 설출세부는 불전 『대사(마하바스투)』를 남기고 있다. 남인도는 대중부계가 많은데, 지역적으로 안드라파라고 하기도 한다.

스리랑카로 건너간 상좌부는 분별설부라고도 하는데, 팔리어에 의한 성전을 완비해서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다. 

유부() 또한 한역 등에 많은 자료를 남겨서 그 교의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외의 부파는 유부나 스리랑카의 상좌부의 전승에서 알려진 것 이외에는 별로 많은 자료는 없다. 

유부는 또한 대승불교에서 부파불교의 대표로 보아서 비판의 화살을 받았는데, 사실, 북인도에서 가장 유력한 부파였다. 

유부는 기원후 2세기에 쿠샨 왕조의 왕 카니시카하에서 확장되었으며 그 학설은 『대비바사론』에 집대성되었다. 

유부라는 이름은 3세에 걸쳐서 일체법이 실유하다는 학설에 의거하는데, 『대비바사론』을 소의로 하는 점에서 비바사사()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 경전을 소의로 하는 것을 주장한 것이 경량부로, 이 파는 현재의 법만을 실유한다고 보았다. 

5세기에 나온 바스반두(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은 유부학설의 강요서인데, 그 입장은 경량부에 따르고 있다. 

속자부의 계통에서는 신심을 구성하는 오온과 어중간하게 존재하는 자아의 존재를 인정, 그 때문에 타파에서 불설위반으로 보았다. 대중부의 계통은 불타를 초월적 존재로 보는 점에 특색이 있는데, 이와 대승불교와의 관계는 정해져 있지 않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것은 기원 전후의 일이다. 전한의 무제가 대원의 천마를 동경해서 서방의 경략에 임한 후에, 동서문명의 교류는 갑자기 번성하였고 소위 실크로드를 개통하자 불교의 동진은 표리의 관계에 있었는데 중국민족에게 서방은 항상 신비의 보고였으며 불교에 대한 대응은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법과 승의 세 가지를 사람들은 3보()라고 한다.

중국으로 전래

중국에서의 최초의 번역불전이라고 하는 『사십이장경』의 서론은 전래 사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느 날 밤, 후한의 명제가 서방에서 전정으로 날아오는 이상한 금인의 꿈을 꾼다. 금인은 머리 뒤에 빛을 지고 전신에서 광명을 내뿜는다. 

신하 중 지혜로운 자가 서방인도의 불일 것이라고 하자, 제는 곧바로 사자를 파견하였고 2명의 인도승이 대월씨에서 낙양에 맞이되며, 『사십이장경』을 번역하였다. 인도승은 불상을 장래하고, 소향예배의 의식을 전하였다. 

제()는 각지에 절을 세우는 것 외에 낙양 교외에 자신의 수릉을 만들고, 천승만기의 의장이 불탑을 둘러싸고 강림하는 서역풍의 벽화를 그리게 하였다.

동남아시아의 불교는 기록이나 종교적 유적ㆍ유물에 의해서 알려진 역사적 불교와 오늘날 신봉되고 있는 현대불교로 나뉘어진다. 

보로부두르 등의 유적을 남긴 자바의 샤이렌드라 왕조의 밀교계 대승불교는 전자의 대표적인 예이다. 

자바불교는 후에 시바교(힌두교 시바파)와 혼교해서 자만 부드라고 하는 독특한 형태의 불교를 낳고, 마쟌파이트 왕조하에서 번영했는데, 이슬람이 지배층에 침투함에 따라서 쇠미하고 15세기 이후 소멸했다. 

수마트라섬에서는 7세기 말에 이 지역을 거쳐서 인도로 간 의정이 스리비자야에서의 불교의 융성을 지적하고, 인도에 가서 불법수행을 하고자 하는 당나라 승려에게 준비를 위해서 이 나라에 체재할 것을 권했는데 수마트라섬의 불교는 14세기 후반까지 비문에 의해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나, 이슬람의 도래와 함께 멸망했다. 

대륙부에서는 먼저 1~2세기부터 7세기경가지 인도차이나반도 남동부에 있었던 부남()에서 불교가 행하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6세기 흥한 진랍에서는 비문에서 대승불교의 홍통()이 확인되며 9세기 초에 성립한 앙코르 제국에서는 힌두교와 함께 대승불교가 행하여지고, 바이욘 등의 훌륭한 불교유적을 남겼다. 

반도 서부의 미얀마(버마)에서는 3세기경부터 9세기에 걸쳐서 번성한 퓨족의 나라 슈리크세트라에서 상좌부와 산스크리트 성전을 신봉하는 근본 설일체유부계의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함께 행하여졌다. 

불교는 5세기 이후 타톤 등의 연해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몬족의 여러 국가에서도 성행하였다. 이들 각지의 불교는 모두 후에 쇠망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 전통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대 불교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남부, 인도네시아의 일부에 보이는 스리랑카계의 상좌부 불교가 중심인데, 이 외에 베트남, 싱가포르 및 동남아시아 각국에 사는 화교에게 신봉되어서 애송용으로 한문경전을 이용하는 중국계 대승불교도 있었다. 단, 후자에 대해서는 독립의 종교인 동시에 유교도교와 함께 중국적인 <3교>를 구성하는 시점을 가지는 것이 요청된다.

사회에서 의 불교

국민 속에 차지하는 상좌부 불교도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왕을 불교의 수호자로 하는 전통을 잃지 않고 오늘날까지 독립을 유지한 태국을 제외하면, 제2차 대전 후 독립한 이들 여러 나라의 불교는 헌법에 의해서 국교(캄보디아, 라오스)나 국교에 준한 지위(미얀마)가 보장되었다. 

이중 미얀마에서는 1961년의 헌법재정에 의해서 불교를 국교로 정했지만, 그 조치가 비불교도의 반발을 사서 정치적 혼란을 야기시켰다. 이런 경험에서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 이후의 미얀마 정부는 정교분리정책을 견지하고, 불교의 정치화를 극도로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주로 지식인 불교도층을 대상으로 하는 명상 중시의 종교운동, 매스 미디어를 이용해서 대중에게 평이한 말로 불교의 덕목을 주장하는 개인승의 출현, 사원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의 근대적 부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원에서의 직업교육의 실시라고 할 수 있다.

출가자의 교단인 상가를 중핵으로 하는 상좌부 불교는 근대화에 따른 도시화의 급속한 진행과 함께 발생한 민중의 가치의식의 변용에 새로운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이런 경험은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제국 중 근대화의 진전이 빠른 태국에서 가장 현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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