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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각종꽃. (국내, 외,,

국화 , Chrysanthemum . 菊花 .

국화 , Chrysanthemum . 菊花 .
품격에의 이끌림, 군자의 자화상이로다

 심사정(), 〈자국괴석()〉18세기경, 종이에 담채, 17×23.9cm, 간송미술관 소장. 
바위틈에 자줏빛 국화가 뿌리를 박고 몇 송이의 꽃을 피우고 있다. 작품 

국화는 인고와 절개의 상징에 그치지 않고, 군자의 자화상으로도 읊어졌다. 

사람은 자신의 현재 모습이나 앞으로 원하는 모습을 사물에 투영하여 그려보고자 한다. 

김매순()은 〈함종 가는 길()〉에서 만난 국화에서 자신이 바란 군자의 모습을 보았다.

돌길 천 굽이 시냇가 따라 나 있는데
말발굽 대담하게 위태로운 길 밟고 가네.
벼랑 틈서리 자줏빛 국화 아무도 상관 않지만
저 홀로 찬 하늘 향해 정성 다해 피어 있네.

아무도 보는 이 없어도 자기 할 일에 정성을 다하는 국화의 모습이 시인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것은 ‘신기독()’의 군자정신이다. 

[대학]의 전() 6장에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싫어하는 것같이 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듯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라 한다.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라 하였고, [중용] 제1장에 “숨어 있는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라 하였다. 

위 시에서 시인은 벼랑 틈 국화에서 ‘신기독’의 경지를 발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서, 위나라 장수 종회()의 〈국화부()〉와 남송의 문인 범성대()의 [국보()] 서()에서는 국화를 군자에 비유하였다.

 

국화에는 다섯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

둥근 꽃송이가 높이 달린 것은 하늘을 본받은 것이고, 잡티 없이 순수한 황색은 땅의 색이며, 일찍 심어 늦게 꽃이 달리는 것은 군자의 덕이고, 찬 서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것은 굳세고 곧은 기상을 드러낸 것이며, 술잔에 가볍게 떠 있는 것은 신선의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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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회, 〈국화부〉

산림의 호사가들은 혹 국화를 군자에 비유한다.

이유는 이렇다.

한 해가 저물면 초목이 변하여 시드는데 오직 국화만은 홀로 환하게 꽃을 피워 바람과 서리를 오만하게 노려보니 이는 숨어 사는 고결한 선비의 지조이다.

비록 적막하고 황량한 상황 속에서도 심오한 도의 경지를 맛보고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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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성대, 〈국보〉 서

 

국화를 아끼어 관찰하고 오랫동안 사색하지 않았다면 나오기 어려운 글들이다. 

응축된 문장으로 담담하게 군자의 이미지를 국화에 투영하였다. 

찬밥 한 덩이와 물 한 바가지로 누추한 골목에서 하루를 지내면서도 학문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고 공자에게 극찬을 들은 안회()를 떠올리게 한다.

 

조선전기에 국화로 군자의 자화상을 다룬 작품으로는, 강희맹()의 〈우국재부()〉와 성현()의 〈국옹설()〉이 우선 눈에 띈다. 

강희맹의 부()는 수양론적 자세에 가깝고, 성현의 산문은 양생론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문득 사계절이 순식간에 바뀌니
여러 꽃이 쇠하여 시들어가네.
국화는 맨 뒤에 비로소 피어나니 殿
맑고 차가운 향기가 뼈에 스미네.
만장의 홍진이 눈을 가리고
된서리가 머리칼에 날아들어도
너는 끝내 향기를 그대로 지녀
밝은 달에게 그윽한 정 붙이네.
- 강희맹, 〈우국재부()〉

 

의인화된 국화는 작자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세상인심은 자주 바뀌지만 나는 국화처럼 맑고 차가운 향기를 지닌 채 살고 싶다. 

때로 세상 먼지가 눈을 가리고 된서리가 머리칼에 파고들어도 나만의 향기를 지닌 채 밝은 달과 같은 세상을 염원하고 싶다. 

 

성현은 벼슬은 버리고 은거하려는 국옹() 신윤조()에게 〈국옹설()〉을 지어주며 그의 호 ‘국옹’에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군자는 어떤 사물이 자신의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이름을 삼는다고 하면서, 오솔길과 집, 서재에 이름을 붙인 예시를 들었다. 

국화는 유아(), 담박()하고 찬란히 홀로 빼어난데, 굴원이 먹고 도연명이 뜯고 두보가 향기를 맡고 소식과 장식()이 읊고, 유몽()과 범성대가 족보로 만들었다며 박학한 지식을 드러내었다.

 이어지는 글이다.

 

국화는 그 색이 누렇다. 

이를 통하여 옹()이 중정()하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것을 안다.

국화는 또 그 냄새가 향기롭다.

이를 통하여 옹의 덕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가리기 어려운 줄을 안다.

국화꽃은 봄에 피지 않고 반드시 가을에 피니, 봄날 햇볕이 화사할 때 피지 않고 반드시 가을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려 한기로 서늘할 때 핀다.

이를 통하여 옹은 지조가 굳고 행실이 독실하여 시류에 혼탁하게 휩쓸리지 않을 것을 안다.

국화의 특성은 달고 부드러워 매우 맛이 좋다.

복용하면 허한 기운을 보충해줄 수 있고, 술에 띄우면 근심을 잊을 만하며, 주머니에 넣어 베고 자면 두풍(: 신경성 두통)을 치료할 수 있고, 물에 담가 마시면 불로장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옹이 정신을 잘 길러 더욱 오래 살 것을 안다.

 

이 글을 보면 국화에 대한 종합적인 식견을 느낄 수 있다. 

인고와 절개, 군자의 표상에 더해 수양과 양생의 문화까지 녹아 있다.

퇴계 이황은 푸른 물가 벼랑에 핀 야국()을 보고 아예 이곳으로 집을 옮기고 싶다 하였고, 추사 김정희는 국화가 비바람 속에서 시인에게 자태를 보여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노라며 꽃 중의 으뜸이라 하였다. 

국화의 결곡한 모습에 고매한 선비들이 매료되어 시를 지어 바친 예이다.

옛 문인들은 국화를 알뜰히도 생각하여 시로 즐겨 읊었다. 

고인()의 작품 속에 그려진 국화를 감상하노라면, 오래 다듬어진 그들의 품격()이 느껴지는 반면 초라하기만 한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국화는 여러모로 삶을 생각게 하는 꽃이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태학사와 손을 잡고<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를 연재한다. 

그림에 숨은 비밀과 사연을 프리즘으로 삼아 한국학의 출렁이는 바다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역사, 문화가 망라되는 항해에 깊고 진한 교감이 깃든 풍성한 바다가 펼쳐지길 해신()에게 기도한다. 

연재는 매주 1회 돛을 달고 항구를 떠난다. 

 

사군자 ,.

요약 동양화의 화제(畵題).

세한삼우(:) 중의 매화와 대나무에 국화와 난초를 더한 것으로 명나라 때 진계유()가 《매란국죽사보()》에서 매란국죽을 사군자라 부른 데서 비롯되었다. 

사군자화는 삼우도()와 같이 세상의 오탁()에 물들지 않고 고절을 지킨 문인·고사()·화가 들의 화제로 애호의 대상이었다. 

묵매도()는 북송()의 미불()이 시작하였다 하나 확실하지 않고, 화광중인()·양보지()가 유명했으며, 묵죽도는 명대()에 와서 일반화한 것으로 계예()·황익() 등이 유명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성행, 조선에 계승되어 사대부의 유교 교양의 일부로 널리 퍼졌고 남종화파() 중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어몽룡()은 묵매도로, 이정()은 묵죽도로 이름을 떨쳤다.

 

국화를 먹는 법

마시는 향기로운"

국화라 하면 진()의 은자 도연명(, 365~427)이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히 전원으로 물러나 살면서 쓴 <술을 마시고서()>라는 시에서 읊은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꽃 따다가, 유연히 남쪽을 바라보노라(, )” 한 구절을 떠올린다. 

국화는 도연명으로 인하여 은일()의 상징이 되었다. 

국화를 두고 도연명은 서리 속의 호걸 상하걸〔〕이라 하였고, 소동파()는 서리 속의 영웅 상중영〔〕이라 하였으니 국화에는 꼿꼿한 선비의 오상고절()이라는 별칭까지 더해졌다.

국화의 나라

운수평(, 1633∼1690), <국화도()>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조선 후기에도 백색, 홍색, 황색 등 세 가지 색깔의 국화를 화분에 길러 감상하였다.

조선은 가히 ‘국화의 나라’라 할 만하다. 

조선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한 가지에 피는 삼색국(), 오색국()이 있었다. 

강이천(, 1768~1801)의 증언에 따르면 김노인이라는 사람이 국화 재배에 경이로운 솜씨를 발휘했다. 

그는 꽃을 일찍 피우게도 늦게 피우게도 하였고, 꽃의 크기를 손톱처럼 작게도 만들었다. 

큰 키에 큰 꽃이 피는 품종도 만들어냈으며, 옻칠한 듯 검은 꽃을 피워내는가 하면, 가지 하나에 여러 빛깔의 꽃이 섞여 피어나게도 했다 한다.

국화는 품종 자체도 매우 다채로웠는데, 몇몇 품종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순백색의 큰 꽃이 피어 옥매()라고도 하는 신라국(), 범 가죽처럼 황색과 적색이 섞여 있는 고려국()처럼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품종이 널리 알려졌다.  

 

고려 충숙왕이 원나라에서 고려로 돌아올 때 오홍(), 연경황(), 연경백(), 규심(), 금홍(), 은홍(), 학정홍(), 소설오() 등 현란한 이름의 국화를 선물로 받아와 조선 초기 정원을 빛내었다. 

 

소중양절인 5월 9일에 즐기던 황색의 왜황()이 유행하였거니와, 심능숙(, 1782∼1840)은 1834년 커다란 흰 꽃이 피고 향기가 아름다운 백운타()라는 일본 꽃을 구해와 국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시기 김정희(, 1786∼1856)의 시에는 “근일에 서양 국화가 중국에 들어온 것만 쳐도 백 수십 종이 된다”고 하였고, 성해응(, 1760∼1839)이 [양국보()]를 편찬한 것을 보면 중국에 들어온 서양 국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하여 김정희의 다른 시에 “163종이나 되는 품종이 많기도 하건만 끝내 학령이 여러 국화 중에 첫째라네”라 한 대로 당시 조선의 정원에는 160종이 넘는 국화가 재배되었다.

국화를 마시다

우지정(, 1647∼1709),<왕원기예국도()>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화분에 여러 가지 색깔의 다양한 국화를 키우는 것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화려한 국화는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고 향기를 즐기기 위한 것이었지만, 국화는 눈과 코를 넘어 입을 즐겁게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신농본초경()]에 따르면 국화는 몸을 경쾌하게 하고 수명을 연장시킨다고 하며 머리와 눈을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선비들은 국화를 차로 끓여 먹거나 술로 담가 마셨다. 

신위(, 1769∼1845)에게도 국화로 담근 술은 몸을 가뿐하게 하는 묘약이었다. 이때의 국화는 식용의 감국()이다.

 

사람들 오래 살고 싶은 소원 있어                                 
이날 은근히 서로 권하여 마신다네.                              
술은 신선처럼 몸을 가볍게 하는데                               
국화꽃 향기가 햇살 아래 풍겨나네.                              


- 신위,<중양절 하상() 등 여러 사람이 반분로()의 “성 가득 비바람에 중양절이 가깝네”라는 시구로 운을 삼아 각기 시 7수를 얻다(滿)>, [경수당전고()] 22책

 

한나라 때 비장방()이 환경()에게 9월 9일 중양절() 집에 재앙이 있을 것이니, 집안사람들로 하여금 각각 붉은 주머니에 붉은 산수유 열매를 담아서 팔뚝에 걸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국화주를 마시게 하면 재앙을 면할 것이라 하였다. 

이로부터 사람들이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는 풍속이 생겼다. 

 

국화주는 액운을 피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몸을 가뿐하게 하고 수명까지 늘려준다 하니 더욱 좋다. 

따스한 햇살 아래 활짝 핀 국화가 향기를 뿜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있으랴? 그러니 잔에 든 것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신선의 음식인 것이다.

조선시대 널리 읽힌 원나라 때의 책 [거가필용사류전집()]에는 국화주를 담그는 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러하다.

 

 9월 감국이 흐드러지게 피면 향이 좋고 맛이 단 노란 꽃잎을 따서 햇볕에 바싹 말린 다음, 청주 한 말에 손가락 길이 정도의 높이로 국화꽃 두 냥을 명주 주머니에 넣어 걸어 두고 병 주둥이를 밀봉한다. 

이렇게 하여 하루를 묵힌 후 명주 주머니를 제거하고 술을 마시면 국화의 향이 우러나고 맛도 달다.

정선(), <동리채국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연명이 중양절에 국화꽃을 따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국화는 좋지만 술이 싫다면 차로 끓여 마시면 된다. 

이규경(,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稿)]에 따르면 반쯤 핀 감국을 따서 푸른 꽃받침 껍질을 긁어내고 샘물에 넣어 끓인 다음 꿀에 타서 마시면 맛이 좋다고 한다. 

국화가 이미 활짝 핀 것은 꽃받침을 제거하고 꿀을 발라 촉촉하게 하여 녹말가루에 굴린 다음, 잠깐 끓는 물에 넣었다 건져서 꿀물에 타고 잣을 띄워 마신다고 하였다. 

 

국화는 구기자와 섞어 차를 끓이기도 하는데 이를 기국차()라 한다. 

[산림경제()]에는 감국 1냥, 구기자 4냥, 차의 싹 5냥, 참깨 반 근을 함께 곱게 갈아 체로 거른 다음, 소금과 들기름을 조금 넣어 한 번 끓인 물에 타서 마신다고 하였다.

 

국화는 약용으로 먹기도 했다. 

[산림경제]에 “감국은 정월에 뿌리를 캐고 3월에 잎을 따며 5월에 줄기를 따고 9월에 꽃을 따는데 모두 응달에 말린다. 

네 가지 맛을 내는 약재를 함께 천 번 빻아 가루로 만들고 술에 한 돈씩 넣어 먹거나 꿀에다 오동 열매 크기의 환으로 만들어 일곱 개씩 하루 세 번 먹는다”라 되어 있다. 

이렇게 따라 하면 될 듯하다.

감국으로 만든 음식

먹을 수 있는 국화 감국. 식용의 국화는 그 맛이 달다 하여 감국()이라고 하고, 진짜 국화라는 의미로 진국()이라고도 했다. 감국은 단엽의 조그마한 꽃잎이 부드러우면서 줄기는 약간 붉은빛을 띤다. 음력 9월 그믐에 피어 10월에 만개한다. 

다만 아무 국화나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굴원()이 [초사()]에서 “저녁에는 가을 국화의 떨어진 꽃잎을 먹는다()”고 했을 때의 국화는 감국()이다. 

 

식용의 국화는 보통 맛이 달다 하여 감국이라 하고, 진짜 국화라 하여 진국()이라고도 한다. 

가국(), 다국(), 강성황()이라고도 불린다. 

감국은 꽃잎이 단엽으로 조그마하고 두꺼우면서도 부드러우며, 줄기는 붉은빛을 띤다. 

국화의 여러 품종 중에 가장 늦게 피어 최만황()이라고도 불린다. 

그 색은 황금처럼 순황색이며 음력 9월 그믐에 비로소 피어서 10월에 만개한다고 한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국화는 크게 두 종이 있는데 줄기가 붉고 냄새가 향긋하며 맛이 단 것은 그 잎을 죽으로 만들 수 있지만, 줄기가 푸른 것은 맛이 써서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먹을 수 없는 것은 구분하여 흔히 쑥부쟁이라 한다.

감국이라야 그 싹으로 죽을 쑤거나 찌개를 끓일 때 잎을 넣기도 하고, 여린 잎으로 나물을 무쳐 먹을 수 있다. 

 

이옥(, 1760∼1815)은 [백운필()]에서 국화를 두고 “봄에는 그 싹을 먹어 나물로 삼고, 여름에는 그 잎을 먹어 생선찌개에 넣고, 가을에는 그 꽃을 먹어 술잔에 띄우거나 떡에 버무린다. 

그 쓰임이 꽃을 보거나 향기를 맡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라 하였다. 

국화의 잎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매운탕에 넣어 먹기도 하며, 꽃은 떡으로 쪄서 먹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 김홍도(), <풍속도병()>프랑스 파리 기메 미술관 소장. 여러 색깔의 국화 화분 곁에 사람들이 모여 놀이를 하고 있다. 문 곁에는 괴석과 석류나무, 국화꽃이 보인다.

 

국화잎으로 무친 나물은 지금도 별미로 알려져 있다.

이 국화 나물을 예전에는 황화채()라 불렀다. 

황화채는 광채()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업나물이라 하였다. 

업나물은 원래 원추리로 만든 나물을 가리키는 말인데, 국화 나물을 가리키는 말로도 혼용됐다. 

 

허균(, 1569∼1618)의 [도문대작()]에는 의주 사람들이 중국인에게 배워 맛있게 조리한다고 한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 중국에서 들어온 요리인 듯하다. 

 

[산림경제]에도 이정귀(, 1564~1635)의 일기를 인용하여 통판()을 지낸 군영()이라는 중국인이 이 나물을 만들어 먹었다 하였다. 

그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6~7월 만개한 원추리의 꽃을 따서 꽃술을 제거하고 깨끗한 물에 데쳐 초를 쳐서 먹는다고 하였다. 

입에 넣으면 맛이 신선의 음식 같아 보드랍고 담박하여 송이보다 나아 나물 중에서 으뜸이라 하였다.

 

황화채, 곧 업나물은 국화의 잎으로도 만들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가을의 별미로 황화채를 들고, 이를 만드는 법을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그 방법은 이러하다. 

가을에 감국의 꽃을 따서 꽃받침과 꽃술을 제거한 다음 나무로 된 소반에 늘어놓고, 깨끗한 물로 살짝 씻은 다음 송엽주()를 이슬이 묻은 듯 살짝 적시고 녹두 가루를 꽃잎 위에 뿌려 바른다. 

이것을 냄비에 물을 붓고 약하게 끓인 물에 데쳐서 건져내는데 이때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한다. 

다시 꽃잎을 하나하나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어 식초를 타고 맛을 내는 여러 재료를 섞어 먹는다. 

이규경은 원추리꽃, 아욱잎, 연꽃, 수박꽃, 당귀잎 등도 같은 방식으로 먹는데 이는 승려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 하였다.

국화꽃으로 만든 국화전()도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국전(), 국병(), 국고()라고도 한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늦가을 감국을 채취하여 꽃받침과 꽃술을 제거한 다음, 물을 뿌려 축축하게 하고 쌀가루를 묻혀 전을 붙이면 된다고 하였다. 

이때 꽃잎이 뭉치지 않도록 해야 모양이 곱다. 

꿀에 담갔다 꺼내어 말려두었다가 겨울이나 봄, 여름까지도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도문대작]에는 한양에서 봄에는 두견화전()과 이화전()을, 여름에는 장미전(), 가을에는 국화병()을 먹었다 하니, 국화꽃뿐만 아니라 진달래꽃, 배꽃, 장미꽃도 모두 전으로 부쳐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노릇노릇하게 지져낸 국화전은 중양절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인기가 있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

국화주는 음력 9월 9일인 중양절의 세시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출처: 한국전통주연구소>

국화전은 중양절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18세기 남인을 대표하는 문인 채제공(, 1720∼1799)은 <명덕동기()>에서 가족들과 야외로 소풍을 다녀온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3월 삼짇날이나 9월 중양절이면 바람이 자고 날씨가 따스한 날을 골라 집안의 부녀자들을 이끌고 솥을 가지고 가서 벼랑의 바위에 앉히고 돌 틈의 들꽃이나 국화를 꺾어 전을 만들어 먹고 쑥국을 끓여 반찬으로 삼았다. 희희낙락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즐거움이 끝이 없었다.

 

삼짇날의 쑥국과 중양절의 국화전은 가장 인기 있는 별미였던 것이다. 

중양절이 되어도 절기가 늦어 국화가 피지 않아 꽃이 없으면 잎으로도 국화떡을 만들어 먹었다. 

이덕무(, 1741∼1793)는 자신의 집에서는 그렇게 먹는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화의 이러한 효능을 잘 알았기에 술에 띄울 뿐만 아니라 아예 국화를 말려 베갯속으로 삼은 예가 있었다. 

18세기 문인 유언호(, 1730∼1796)가 그렇게 했다. 

 

유언호는<국침명()>이라는 글을 지었는데, 이에 따르면 유언호의 백형이 묘향산에 갔다가 산국() 몇 되를 가지고 와서 베로 감싸 베개를 만들어 사용하였더니 국화향이 은은하게 코에 어렸다고 한다. 

선비의 고고한 정신까지 은근히 깃들인 것이니 더욱 멋이 있었으리라. 

[산림경제]에는 가을에 감국을 따서 붉은 베로 만든 자루에 넣어 베개를 만들면 머리와 눈을 시원하게 한다고 되어 있으니 이 비방을 따른 것

 

소국.

아름다운 처방전 Chrysanthemum.

꽃말

밝은 마음, 고상, 실연
흰색: 성실, 진실 
노란색: 실망 
빨간색: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최근 식물을 활용한 치료법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베란다에서 채소를 기르거나 꽃을 가꾸는 등 식물을 가까이 해 얻는 치료 효과가 상당하다고 한다. 

텔레비전에서 알코올과 마약 중독이었던 한 남자의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절대 헤어나지 못할 것 같던 그를 구원한 것은 바로 꽃이었다. 

그는 작은 씨앗에서 새싹이 돋고, 잎이 자라나 꽃이 피고, 마침내 꽃이 지고 열매가 맺는 과정을 지켜보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작은 식물에도 생명의 경이로움이 담겨 있다.

이러한 간접 효과 말고도 직접적으로 치료에 도움을 주는 꽃들이 있다. 

 

사시사철 흔히 접할 수 있는 소국은 입 냄새, 비염, 고혈압, 저혈압, 불면증, 두근거림, 피로회복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저 집에 소국을 꽂아놓는 것만으로도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꽃이 주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덤이다. 

소국 한 송이를 거실에 놓아두면 어떨까?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이 우리 몸에 있는 가벼운 질환 하나쯤은 거뜬히 치료될 것이다.

 

국화의 상징성

늦은 서리를 견디면서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국화는 길상과 상서로움를 상징한다. 

국화는 그 생태적인 속성과 연결되어 은군자()·은일화()·영초()·옹초()·천대견초() 등 고상함과 품위 및 장수를 의미하는 별칭을 가진다.

군자·은자·지조
유교에서는 많은 꽃이 피는 봄이나 여름을 피해 가을에 서리를 맞으며 홀로 피는 국화를 군자의 덕성에 비유해 사군자()의 하나로 여겨왔다.

사군자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인데, 이 중 국화는 국유걸사지풍()이라 하여 뛰어난 사람[]의 풍도()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국화는 가을에 홀로 핀다는 점에 연유하여, 절개를 지키며 속세를 떠나 고고하게 살아가는 은자()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국화가 은일지사()의 상징이 된 것은 중국 진()나라의 도연명(, 365~427)과 관련이 있다. 

도연명은 관직에 있었으나 그 생활이 생리에 맞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국화 심기를 좋아했으며 <귀거래사()>를 비롯한 여러 시에서 국화에 대해 읊었다.


장수의 선약
국화는 노장사상에 의해 신선의 초화()라 일컬어졌는데, 이는 중국의 주유자()라는 사람이 국화를 달여 마시고 신선이 되었다는 고사로부터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고사의 영향을 받아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생겼는데, 국화주는 궁중의 축하주로 애용되었으며 음력 9월9일 중량절()에 국화주를 마시면 무병 장수한다고 여겨졌다.

 

국화무늬의 전개양식

국화무늬는 인화형()·당초형()·절지형()·사생형()의 4가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인화형 국화문은 정면형() 들국화와 잎을 함께 표현해 실제 국화와 같이 표현한 형태를 말한다. 

국화의 한 종류인 들국화[야국()]는 산에서 자라는 것으로, 화형이 단순·간결해 조형물에 종종 시문되었다.
당초형 국화문은 당초풍의 줄기에 국화를 배치한 형태이다.
절지형 국화문은 국화 줄기를 함께 표현한 형태로, 줄기에 만개한 국화송이·봉오리·잎 등을 함께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사생형 국화문은 자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으로, 뿌리를 땅에 두고 있거나 수평선상에서 줄기가 뻗어나간 형태를 하고 있다.

 

국화무늬의 시대별 특징

고려시대
국화문 형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녹유인화문사이호()>(통일신라시대)에 나타난 압인문() 형태의 추상적 화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국화문이 본격적으로 시문된 시기는 고려시대 중엽이다. 

고려시대의 조형물에 나타난 국화문의 표현특징을 살펴보면, 청자()에서는 인화형()·당초형()·절지형()·사생형()의 4가지 전개양식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상감청자의 경우, 화문은 작고 단순한 정면형 들국화 무늬로 표현되었다. 

잎은 눈썹형·끝이 말린 형·잎이 단순화된 형 등으로 다양하다.
인화형 국화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동화퇴화국화문합()>(12세기 후반), 호암미술관 소장의 <청자상감국화병()>(13세기 후반) 등에 나타난다. 

 

당초형 국화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철화국당초문매병()>(12세기), 절지형 국화문은 호암미술관 소장의 <청자상감국화모란문장경각병()>(12세기), 사생형 국화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상감국죽문매병()>(12세기 중엽)에서 살필 수 있다.

고려시대의 동경()에서는 들국화가 다발로 피어있는 모습을 정면형 화문으로 형상화한 인화형 국화문 및 절지형 국화문으로 표현되었다. 

나전칠기에서는 주로 당초형 국화문이 등장하는데 절지형 국화문도 있다. 

국화의 줄기는 강한 곡선을 띠고 있어 장식적이다. 

불화에서는 인화형 국화문과 당초형 국화문의 형식으로 표현되었는데, 나전칠기의 국화문보다는 사실적이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화문이 크고 입체적인 사생형 국화문이 주류를 이루었고, 인화형 국화문과 당초형 국화문은 특정 조형물에 한정되어 나타났다. 

국화 형태를 대담하게 생략하고 재구성한 조선시대의 국화문은 인위적인 면이 보였던 고려시대 국화문과는 차이가 있다. 

조선시대의 조형물에 나타난 국화문의 표현특징을 살펴보면, 분청사기에서는 고려대박물관 소장의 <분청사기인화문태호()>(15세기)에서와 같이 정면형 들국화가 다발로 피어 있는 모습이 형상화된 인화형 국화문이 나타난다. 

백자에서는 사생형 국화문이 나타나는데 고려청자의 국화문에 비해 화형이 커졌으며 겹국화문도 등장하였다. 

청화백자에서는 국화문이 대담하게 간략화된 형태로도 시문되었다.
나전칠기에서는 당초형 국화문이 시문되었는데, 고려시대의 장식적인 당초 곡선이 조선시대에 와서는 보다 여유로운 형태로 변화되었다. 

당초형 국화문이 시문된 유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나전국당초매죽문방함()>(16세기)이 있다.

민화에서는 사생형 국화문 형식이 등장하는데, 겹국화문이 주를 이루며 농담이 없는 채색기법으로 인해 단순해 보인다. 

자수품에서는 수병풍()의 경우 겹국화와 들국화 형태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수저집과 같은 소품에서는 사실성이 약화된 단순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국화문은 점차 간략화·도안화되어 조선말기에는 매화 및 이화()와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금박에서는 인화형 국화문이 등장하는데, 2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중앙에 화심()을 표현하고 주위에 꽃잎을 원형으로 배치시켜 정면형 국화 형태를 나타내는 방식이다. 

둘째는 꽃잎을 중첩시켜 겹국화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는 조선왕실 유물의 어보 및 어책을 싸는 보자기의 금박 장식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분류

재배 국화는 꽃송이의 크기에 따라서 대국()·중국()·소국()으로 나누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추국()·동국()·하국() 등으로 나눈다. 

대국은 꽃의 지름이 18cm이상 되는 것으로 흔히 재배하는 종류이며, 중국은 꽃의 지름이 9∼18cm, 소국은 꽃의 지름이 9cm 미만의 것을 말한다. 

소국은 꽃잎의 형태도 여러 가지이고, 꽃색도 다양해서 현애작이나 분재작으로 적당하다.

꽃이 피는 시기에 의한 분류는 주로 절화용 품종에 적용하는데 자연조건에서 추국은 10~11월, 동국은 12월 이후, 하국은 5~6월에 꽃이 핀다. 

하국은 낮밤의 길이에 관계없이 온도만 알맞으면 언제든지 꽃이 피므로 전조재배에 유리하다.

 

수레국화 , nflower.

유럽 동부와 남부 원산이며 관상용으로 가꾸고 있다. 

높이 30∼90cm이고 가지가 다소 갈라지며 흰 솜털로 덮여 있다. 

잎은 어긋나고 밑부분의 것은 거꾸로 세운 듯한 바소꼴이며 깃처럼 깊게 갈라지지만 윗부분의 것은 줄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여름에서 가을까지 피지만 온실에서 가꾼 것은 봄에도 핀다. 

 

두화()는 가지와 원줄기 끝에 1개씩 달리고 많은 품종이 있으며 색깔이 다양하다. 

꽃 전체의 형태는 방사형으로 배열되어 있고 모두 관상화이지만 가장자리의 것은 크기 때문에 설상화같이 보인다.

 총포조각은 4줄로 배열하며 날카롭고 긴 타원형 또는 타원형 줄 모양으로 가장자리는 파란색을 띤다. 

독일의 국화()이며, 꽃말은 '행복감'이다.

 

국화과에 속하는 센토레아속(Centaurea)에는 약 500여종이 있으나 그 중 원예용으로 많이 쓰이는 것은 시아누스종(C. cyanus)으로 우리말로는 수레국화라 부른다.  

줄기는 분지력이 왕성하다. 

줄기와 잎은 약간 백록색의 솜털로 덮여있고 줄기는 분지한다. 

잎은 선상피침형 또는 좁은 선형으로 기부의 잎은 도란상 피침형이다. 

꽃색은 주로 자색이며 이외에도 백색, 분홍, 자주색, 복색 등으로 다양하며, 12월부터 4월에 걸쳐서 순차적으로 개화한다. 

두화는 가지와 원줄기 끝에 1개씩 달리고 많은 품종이 있으며 색깔이 다양하다. 

 

식물명 : 수레국화
과명 : 국화과
학명 : Centaurea cyanus
종류 : 초본(풀)
이명 : 시차국, 남부용, 도깨비부채
꽃색 : 자주색
계절 : 여름
분포-지리 : 유럽 동남부 원산(원예품종), 전국
분포-지형 : 관상용 재배
생육상 : 1~2년생초본(한해 또는 두해살이풀)
높이 : 30~90cm
개화기 : 6월 ~ 9월
결실기 : 8~10월
열매의 형태 : 수과(여윈열매)
용도 : 관상용, 염료재(식물전체-청색염료재)
기타 : 독일 국화이다.

전국 각지에 분포

 

특징

머리모양꽃차례는 남청색, 청색, 연한 홍색, 백색 등 여러가지 품종이 있다.

독일의 국화이었다.

잎은 어긋나기하고 밑부분의 잎은 길이 15cm 정도로서 거꿀피침모양이며 우상으로 깊게 중열되고 윗부분의 것은 선형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고 흰 솜털이 밀생한다.

꽃은 6-7월에서 가을까지 피지만 온실에서 가꾼 것은 봄에도 피고 머리모양꽃차례는 가지와 원줄기 끝에 1개씩 달리며 감청색, 청색, 연한 홍색, 백색 등 여러가지 품종이 있고 모두 관상화이지만 가장자리의 것은 특히 크기 때문에 혀꽃같이 보인다. 

총포조각은 4줄로 배열되며 외편이 가장 짧고 중편은 백색 또는 은색의 막질이며 가장자리와 더불어 뾰족한 돌기같은 톱니가 있고 내편은 피침형이다.

높이 30-90cm이고 가지가 다소 갈라지며 백색 면모가 밀생한다.

관상용으로 쓰인다.

 

개화형태에 따라 하나의 꽃대에 하나의 꽃을 피우는 스탠더드국화로 흔히 장례식이나 제례용으로 사용되는 흰색, 노란색이 국내에서는 유통되고 있으며, 하나의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을 피우는 스프레이국화로 보통 꽃꽂이나 꽃다발용으로 사용되며 시장이나 화원에서 보이는 다양한 색들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국화는 화색이 아주 다양하고 화형도 가장 흔하게 보이는 홑꽃형을 비롯하여 겹꽃형, 아네모네형, 탁구공같은 폼폰형, 가늘고 긴 거미줄 모양같은 스파이더형까지 다양함. 최근에는 실내인테리어용으로 사용되는 분화용(초장이 30cm미만) 국화들도 많이 선을 보이고 있다.

추위에 아주 강하여 노지에서 월동이 가능한 여러해살이 화초로 낮의 길이가 12시간 이하상태에서 꽃눈분화가 이루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음.

 

비슷한 식물: 산국/구절초/감국

구별법: 

원예종으로 현재 유통되고 있는 국화는 줄기가 곧고 튼튼한 반면 우리나라 야생화들은 줄기가 가늘어 흐늘거리며 핌.

 

재배정보

심는 방법

절화용: 이랑 나비 1m, 포기 간격 15cm 정도씩 일정한 간격으로 삽목묘를 도복 방지용 네트 중앙에 심은 뒤 생육관리한다.
분화용: 초장이 30cm미만 이어야 상품화가 가능하므로 직경 12cm미만의 이색포트에 삽목묘 정식후 생육관리한다.


기후 &  토양

우리나라 여름과 가을 날씨일경우 가을에 정상적으로 국화꽃이 핀다. 

생육온도는 15~20℃, 꽃눈분화온도는 18℃가 적절하다. 

일장은 낮의 길이가 12시간 이하로 되는 단일조건이다.


토양조건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사양토나 양토가 적합하고 여러해 동안 같은 장소에서 재배시에는 연작장해가 나타나므로 연작은 피해야 한다.



관리하기물주기

배수가 잘되는 토양에서 건조하지 않도록 관수한다. 

정식직후에는 충분히 관수하여 뿌리가 잘 활착되도록 하고 활착이 되어 생육중에는 토양표면을 건조하게 관리하여 흰녹병예방을 하고 꽃눈 형성이 된 후에는 관수량을 적게 조절한다.


거름주기

정식 2주전까지 10a당 퇴비 10a당 퇴비 2톤, 고토석회 100kg, 복합비료 등을 섞어 깊게 밭을 고르게 만든다.



꺾꽂이 방법

가지끝으로부터 5~10cm되는 위치를 손가락이나 면도칼 등으로 자른다.
2~3매의 잎을 남기고 5-6cm 정도의 삽수를 만든다.
삽수를 발근촉진제등에 잠깐 담그거나 약제를 발라준다.
삽목상자나 플러그트레이등에 질석이나 펄라이트가 섞인 인공상토를 담아 삽수 2~3cm깊이로 꽂는다.
삽목후 충분한 물을 주고 뿌리가 나올때까지 음지에서 관리한다.



질병관리

흰녹병

증상 - 저온과습할때 잎 뒷면에 담록색의 곰팡이가 핀다.

충해(응애)
증상 - 아주 작으며 심하면 거미줄 같은 게 생기고 잎의 뒷면에 기생한다.

충해(진딧물)
증상 - 어린 싹이나 잎뒷면에 떼를 이루며 흡즙하여 잎이 위축되거나 생육저하된다.
치료 - 전용 약제를 구입하여 살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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