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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海印寺], 1

해인사,[寺], 1

석조여래입상,[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여래입상.

유형/ 시대/ 성격/ 건립시기·연도/ 소재지/ 소유자/ 관리자/ 문화재/ 지정번호/문화재/ 지정일/

유적
고대/남북국/통일신라
불상
9세기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85 (치인리), 해인사
해인사
해인사
보물 제264호
1963년 01월 21일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64호로 지정되었다.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1,430m) 남서쪽에 있는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재위 800∼809) 때 순응()과 이정()이 세웠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해인사에 있는 여래입상의 높이는 2.1m, 재료는 화강석이다. 이 불상은 목이 절단되고 어깨와 두 팔이 모두 깨졌으며, 발도 없어졌고 광배()와 대좌()도 결실되었다. 머리는 소발()이며 육계()가 매우 낮고 갸름한 얼굴은 머리와 함께 긴 타원형이다. 눈, 코, 입은 거의 마멸되었는데 코가 짧고 입은 작은 편이다. 왜소한 불신()에 비해 머리가 크고 어깨는 좁은 편이며 두 팔은 몸에 밀착하여 붙였고 몸은 많이 깨어졌는데 굴곡이 드러나지 않아 석주() 같은 느낌이 든다. 오른손은 팔꿈치를 꺾어 가슴으로 올린 것 같고 왼손은 그냥 내린 듯하다.

법의()는 통견()이며 옷무늬는 특이한데 상체의 양쪽에서 비스듬하게 난 선이 중심에서 만나 날카로운 'V'자 모양을 이루는 옷주름은 허리부분에서 'U'자 모양으로 바뀌어 양쪽 다리에 물결무늬를 형성하였다.

합천 해인사 석조여래입상 ※ 본 저작물은 문화재청에서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저작물로, 해당 저작물은 문화재청 누리집(홈페이지)(http://www.heritage.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손상이 심하지만, 평판적이고 형식화한 조각 수법 등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물 제264호.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다. 불상은 2.1m의 크기이며, 광배( : 붓다의 몸에서 나온 빛의 표현)와 대좌가 결실되었고 무릎 아랫부분이 잘려 나간 상태이다. 목도 부러졌으며, 전체적으로 박락이 심한 편으로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해인사 석조여래입상에 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불상 조성에 관한 배경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해인사 석조여래입상은 머리가 몸에 비해 큰 편으로, 원래는 상당히 입체감이 있었던 불상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구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없으나 불상이 갖추어야 할 종교성은 충분히 지녔던 것으로 추측된다

불상은 낮고 편평한 육계( : 정수리 위에 솟아 나온 부분)와 후덕하게 보이는 양 볼과 턱, 어깨까지 닿아 있는 귀 등에서 원만한 상호( : 얼굴)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의 앞면보다 옆면의 폭이 상대적으로 길어진 조형이다.

머리에 비해 좁아 보이는 어깨, 장방형의 돌을 간략하게 다듬은 듯한 불신( : 불상의 몸)의 모습, V자 형태의 딱딱한 법의( : 불상의 옷) 주름 등에서 불상이 형식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수인( : 손 자세)은 오른손을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렸으며, 왼손을 옆으로 내려 뜨렸다. 박락이 심하여 법의의 주름이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통견( : 옷이 양쪽 어깨를 덮고 있는 것) 형식으로서 V자 문양이 배꼽까지 내려오다가 W자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통일신라시대 718년에 조성된 국보 제82호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이 조성된 후, 통일신라시대 8세기에 유행했던 것이다.

해인사 석조여래입상은 불두( : 불상의 머리)의 모습과 허리를 강조하는 등 통일신라시대 8세기의 불상 조형을 계승하고 있지만, 머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어깨, 선각()화 되어 가는 법의 주름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9세기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이 간취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8세기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상호의 원만한 표정이나 법의의 주름 형식 등을 계승하고 있으나, 머리에 비해 좁아진 어깨, 경직화되고 간략화된 법의 주름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통일신라시대 8세기 불상의 양식을 계승한 9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예이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에 수도 경주()에서 유행했던 양식이 9세기에 지방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표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광배와 대좌를 잃은 이 불상은 목이 절단되는 등 전체적으로 손상이 심하지만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계통을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육계가 낮은 소발의 머리에 갸름한 얼굴로 코가 짧고 입이 작다. 머리에 비해 왜소한 불신은 각진 좁은 어깨, 몸에 밀착된 두 팔, 허리 등의 몸의 굴곡이 표현되지 않은 네모진 신체는 마치 석주와도 같다.

여기에 새겨진 넓은 띠주름식의 법의는 V자로 흐르다가 허리 부근에 U자형으로 바뀌어 두 다리에 물결무늬를 형성한 점 등은 당시 유행하던 통일신라 말 석불상들에 나타나던 특징을 따른 예라 하겠다. 이처럼 이 불상은 평판적이며 경직된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신라 말 내지 고려 초의 석불상인 것이다.

해인사에 모셔져 있는 이 석불입상은 광배(光背) 대좌(臺座)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목이 절단되고 어깨와 두 팔이 모두 깨졌으며 발도 없어졌다.

민머리에는 작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얼굴은 긴 타원형으로 많이 닳고 손상되었다. 머리에 비하여 왜소해진 몸은 굴곡이 거의 드러나지 않아서 마치 돌기둥 같은 느낌이 든다. 좁아지고 각진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양쪽에서 비스듬히 흐른 선이 중심에서 만나 날카로운 V자형을 이루다가, 허리 부근에서 U자형으로 바뀌어 두 다리 사이로 흐르고 있다. 오른손은 팔꿈치를 꺾어 가슴 앞으로 들었고, 왼손은 내렸는데 두 팔은 몸에 바짝 붙어 있는 모습이다.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 불상을 고부조하고 발 아래 대좌를 마련한 이 불상은 머리 뒤에 원형두광을 얕게 새기고, 나머지 부분을 신광으로 처리한 석주형의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얼굴과 두 손을 정교하게 조각한 반면 불신은 마치 석주에 새긴 듯 옷주름 등을 간략하게 처리했다. 육계가 높직한 소발의 머리, 꼬리가 올라간 눈, 융기된 인중이 뚜렷한 비만한 얼굴, 건장하나 평편적인 가슴에 보이는 승각기, 당당한 왼쪽 어깨에 나타난 고리장식 등은 9세기 초로 추정되는 백률사 금동약사불입상(국보 제28호)과 비교되는 당대의 걸작품이라 하겠다.

이 불상은 신체 비례의 불균형, 평면적이고 형식화된 옷주름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참조항목,

가야면, 합천 해인사

카테고리,

출처 ^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해인사 석조여래입상 [海印寺石造如來立像] (두산백과)

[한국의 사찰문화재­경상남도Ⅰ』(문화재청․대한불교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 2009)

[국보』(증보 상)(박성래, 예경산업사, 1990)

[합천 해인사 석조여래입상 [陜川海印寺石造如來立像]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해인사 석조여래입상 (답사여행의 길잡이 13 - 가야산과 덕유산, 2000. 2. 7., 한국문화유산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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