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 범어 샤카무니(Sakyamuni)
부처로 모시는 석가모니. 석가모니는 불교의 교조로, 범어 샤카무니(Sakyamuni)의 음역으로 석가족에서 나온 성자라는 뜻이다. 부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 본래 '석가탄신일'로 불리었으나, 2018년 '부처님오신날'로 공식명칭을 변경하였다.
훗날 불교의 개조(開祖)가 된 고오타마 싯다르타(Gotama Sidhārtha)의 성불 후 이름으로 그를 존경하게 된 사람들이 붙여 준 존칭이다. 탄생과 입멸 연대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나 우리 나라는 세계불교우의회가 채택한 B.C 624∼544년 설을 따르고 있다.
초파일(初八日)이라고도 한다. 부처는 BC 624년 4월 8일(음력) 해뜰 무렵 북인도 카필라 왕국(지금의 네팔지방)의 왕 슈도다나(Śuddhodāna)와 마야(Māyā)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경(經)과 논(論)에 부처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으나, 자월(子月:지금의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 8일은 곧 인월(寅月: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2월 8일이므로 원래는 음력 2월 8일이 맞다. 그러나 불교의 종주국인 인도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부처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고, 한국에서도 음력 4월 초파일을 탄신일로 보고 기념하며 1975년 1월 27일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본래 석가탄신일로 칭하였으나, 2018년 '부처님오신날'로 공식명칭을 변경하였다.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서 양력5월 15일을 부처 탄신일로 결정하였다. 또 국제연합은 1998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회의의 안건이 받아들여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부처 탄신일로 정하여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그는 중인도의 카필라(Kapila)국 아버지 정반왕과 어머니 마야부인 사이의 태자로 태어났다. 어머니 마야부인은 그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돌아가고 그 후 태자는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 양육되었다. 성장하여 이웃 나라의 야쇼다라 공주를 태자비로 삼고 아들 라훌라를 낳았다. 그러나 젊은 날의 태자는 평범한 왕자로서 일생을 살기보다는 삶의 근본 문제인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길을 찾는 데 더 골몰했다. 그러던 그는 29세가 되던 해의 어느날 마침내 출가를 결행하였다.
출가한 뒤 6년여 동안 여러 스승을 찾아 다니며 배우기도 하고 혹독한 고행도 해 보았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수행방법을 중도로 바꾸어 부다가야(Buddhagaya)의 보리수 아래에서 조용한 명상에 들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지 이레 만에 드디어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수행자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마침내 대각을 이루고 부처가 된 것이다. 그 후 부처는 베나레스의 교외인 녹야원으로 가 자신과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들을 대상으로 초전법륜을 말하고, 45년 동안 인도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법을 하며 교단을 일으켰다.
노쇠해진 부처님은 80세가 되던 해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고요한 열반에 드셨다. 마지막 설법에서 석존은 “자신이야말로 등불이며 법이야말로 등불이다.”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긴다. 이 점은 불교가 신학이 아니라 인간학이라는 평가를 가능하게 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부처는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해탈을 얻은 사람이다. 나아가 그는 일체중생을 고통에서 건져 내고자 한량없는 지혜와 무한한 자비심을 나타내 보인 도덕적 완성자였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불교의 신행대상은 어디까지나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다만 그 부처님은 신격화된 절대적 존재라기보다는 제법의 실상을 여실하게 깨달은 진리의 발견자로서, 존경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부처님에 대한 찬사는 그를 지칭하는 열 가지 별호[如來十號]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실로 그는 고귀한 자[無上士], 존경할만한 자[應供], 완전한 현자[正遍知], 지혜와 덕행의 완성자[明行足], 다시는 생사해[生死海]에 나오지 않을 복된 자[善逝], 세상의 일체를 다 아는 자[世間解], 제신과 인간의 스승[天人師], 인간의 자기극복에의 독보적 안내자[調御丈夫], 그리고 불세존(佛世尊)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아 아는 자’의 의미와 ‘그 진리를 뭇 중생들을 위해 널리 펴신 분’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불교란 바로 그런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신행양식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입멸 후 불교 교단 내에서는 새삼 부처님이란 누구인가, 불신(佛身)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이를 둘러싼 견해차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이 불타관은 근본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라는 불교의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여러 형태로 변천되었다.
5세기 무렵 북인도에서 출생한 아상가(무착)와 바수반두(세친) 형제의 저작으로 알려진 일련의 유가행 유식학의 논서들에서 삼신설(三身說)로 정리되면서 일단 이론적으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이를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 논서들로는 미륵송(彌勒頌), 세친석(世親釋)으로 알려진 ≪대승장엄경론≫과 ≪구경일승보성론≫을 들 수 있다.
전자에서 들고 있는 삼신은 자성신(自性身,svābhāvika-kāya)·수용신(受用身, Sā○bhogika-kāya)·변화신(變化身, nairmā○ika-kāya)이며, 후자에서 들고 있는 삼신은 실불(實佛, svābhāvika-kāya)·수법락불(受法樂佛, sāmbhogika-kāya)·화신불(化身佛, nairmā○ika-kāya)과 법신(法身, dharma-kaya)·보신(報身, sa○bhoga-kāya)·화신 또는 응신(化身, nairmā○ika-kāya)이 곧 그것이다. 이 두 논서에 언급되고 있는 삼신은 원어에서 알 수 있듯이 전적으로 중복되는 개념이다. 물론 내용으로는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부분도 있으나 대체로 그것이 뜻하는 바는 대동소이한 것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법신·보신·화신이라고 이름한 ≪보성론≫의 삼신관을 따르고 있으나 이론적 명확성은 오히려 ≪장엄경론≫에서 더 잘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엄경론≫의 설명에 따르면 “자성신과 수용신과 변화신은 실로 모든 부처의 몸을 구분한 것이며, 제1신은 다른 두 신의 소의(所依)이다.”. 이를 다시 세친은 “모든 부처에는 삼신이 있다. 자성신은 법신으로서 전의(轉依)를 특질로 한다. 수용신은 이에 의해 회중륜(會衆輪)에서 법의 수용을 이루는 것이며, 변화신은 그 변화에 의해 중생을 이익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섭대승론≫은 “이 중에 자성신이란 여러 여래의 법신이다. 모든 법에 있어서 자재전(自在轉)의 소의(所依)이기 때문이다. 수용신이란 부처의 각종 회중륜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법신을 소의로 하여, 청정한 불토와 대승의 법을 향수(享受)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신이란 법신에 의지하여 도솔천에 있는 천궁(天宮)에서 전생(轉生)하고, 태어나고, 욕심을 행하고, 출가하여 외도(外道)가 있는 곳에서 수행하고, 고행을 이루고, 보리를 증득하고, 법륜을 굴리고 대열반에 들어 가기 때문이다.”라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제3의 변화신이 바로 석존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삼신설의 상호관계는 깨달음의 본체로서 법신과 수많은 공덕의 과보로 받은 몸이라는 의미의 보신, 그리고 지혜와 자비심을 본질로 하는 ‘깨달음’을 중생 이익을 위해 회향하려는 목적에서 현세로 몸을 나투신 화신 또는 응신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 관계를 ≪화엄경≫이나 ≪대승기신론≫ 등에서는 좀더 알기 쉽게 체(體)·상(相)·용(用)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즉 진여의 체는 법신으로, 상은 보신으로, 용은 화신 또는 응신으로 대비해서 해석하려는 입장이 곧 그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역사적 인물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일단 화신불로 이해된다.
석가, [ 釋迦 , Sākyamuni ]
출생지/ 직업/ 가족관계/
룸비니 |
성자 |
아버지 : 숫도다나(淨飯王) 어머니 : 마야(摩耶夫人) 배우자 : 종매 야쇼다라(從妹 耶輪院羅) |
불교를 창시한 인도의 성자(聖者)로 성은 고타마(Gautama: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ārtha:悉達多)이다. 부처님, 부처, 석가모니, 석가세존, 석존, 세존, 석가, 능인적묵, 여래, 불타, 붓다, 불(佛)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석가모니불
원어명/ 출생-사망/ 본명/ 별칭/ 국적/ 활동분야/ 출생지/
Śākyamuni |
BC 563? ~ BC 483? |
고타마 싯다르타 |
석가모니·석가문·능인적묵·석존·부처·붓다·여래·세존 |
인도 |
종교 |
룸비니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족의 성자의 뜻). 석존(釋尊), 이름은 Siddhartha(悉達多), 성은 Goutama (喬答摩, 瞿量). 역사적 불타, 불교의 창시자(출생, 사망에 관해서는 연대에 이설이 많다). 오늘날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 가까이에 카비라밧토(迦毘羅城)라고 하는 소국가를 형성하고 있던 석가족 출신으로 아버지는 숫도다나(淨飯王), 어머니는 마야(摩耶夫人). 어머니가 출산을 위해 친가에 가는 도중, 룸비니(藍毘尼)에서 쉴 때 출생했는데, 생후 7일째에 모친이 죽고, 숙모 마하프라 자파디(摩闍波闍波提)에게 양육되었다. 자라서 종매(從妹) 야쇼다라(耶輪陀羅)와 결혼하고, 아들 라후라(羅睺羅)를 낳았다.
29세 때 출가하여 6년간의 고행을 하였으나, 그 헛됨을 알고, 같이 수행하던 5인의 수행자와도 헤어져, 부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서 성도(成道)했다.
석가모니(釋迦牟尼)·석가문(釋迦文) 등으로도 음사하며, 능인적묵(能仁寂默)으로 번역된다. 보통 석존(釋尊)·부처님이라고도 존칭한다. 석가는 샤카(샤키야,Sākya)라는 민족의 명칭을 한자로 발음한 것이고 모니(muni)는 성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석가모니라 함은 본래는 '석가족(族) 또는 샤키아 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autama: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ārtha:悉達多)인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Buddha:佛陀)라 불리게 되었다. 또한 사찰이나 신도 사이에서는 진리의 체현자(體現者)라는 의미의 여래(如來:Tathāgata), 존칭으로서의 세존(世尊:Bhagavat)·석존(釋尊) 등으로도 불린다.
현재의 네팔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산(山) 기슭의 카필라성(Kapilavastu:迦毘羅城)을 중심으로 샤키야족[釋迦族]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석가모니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Śuddhodāna:淨飯王)와 마야부인(Māyā:摩耶) 사이에서 태어났다. 샤키야족은 그 왕호가 정반왕, 그리고 정반왕의 동생이 백반(白飯)·감로반(甘露飯) 등으로 불리고 있는 점에서 미작(米作) 농경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석가모니는 크샤트리아계급 출신이라고 하지만, 샤키야 족 내부에 카스트의 구별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또한 그가 순수한 아리아인(人)이라는 것도 확실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네팔계(系) 민족에 속하는 종족이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아리아 문화의 영향하에 있었던 것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마야부인은 출산이 가까워짐에 따라 당시의 습속대로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 위해 고향으로 가던 도중 룸비니동산에서 석가를 낳았다. 이는 아소카왕[阿育王]이 석가모니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이 곳에 세운 석주(石柱)가, 1896년에 발견·해독됨으로써 확인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산에서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이 찾아와 왕자의 상호(相好)를 보고, "집에 있어 왕위를 계승하면 전세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며, 만약 출가하면 반드시 불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의 생몰연대에 관하여는 이설(異說)이 많으나, 그 중 유력한 것은 스리랑카의 《도사(島史) Dīpavasa》, 《대사(大史) Mahāvasa》에 근거하여 불교학자 W.가이거가 주장한 BC 563∼BC 483년 설이다. 이 설은 중국의 《역대삼보기(歷代三寶紀)》에 전하는 중성점기(衆聖點記), 즉 불멸(不滅) 후 최초의 율장(律藏)이 결집되었을 때 제1점을 치기 시작하여 매년 1점씩 쳐서, 제(齊)나라의 영명(永明) 7년(AD 490)까지 975점에 이르렀으므로 불멸이 BC 485년이라는 설(BC 565∼BC 485년)과도 대략 일치된다. 그외에 BC 624∼BC 544년설, BC 463∼BC 383년설 등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전자를 채용하고 있다.
그 후 사르나트(鹿野苑)에 가서 헤어졌던 5인의 비구에게 최초의 설법(初轉法輪)을 행하고, 이어 마가다국에서는 마하가섭(摩阿迦葉), 사리불타(舍利弗), 목가라나(目健連)를 제자로 삼고, 국왕 빈비사라(頻婆娑羅王)의 귀의를 얻어 교세를 확장하고, 또 고향의 석가족으로부터도 종제인 아난다(阿難), 아나룻다(阿那律), 이모 나다(難陀), 아들인 라후라 등 유명한 제자가 배출되었다. 이후 45년간 인도 각지를 순력하면서 설법하고, 쿠나시가라의 사라쌍수(娑羅雙樹)사이에서 열반했다.
그의 윤색된 생애의 여러 사건은 불전(특히 불경전)안에 기록되고, 불전도(佛傳圖)로서 불교세계 도처에 표현되었다. 석가의 모습은 처음에는 절대로 표현되지 않았으나 기원 100년 전후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상용(像容)도 정형화된 뒤, 대승∙소승 불교에 있어서의 불상(여래상)의 규범이 됐다. 석가의 불상 모습에 대해서는, 탄생불, 수하사유상(樹下思惟像), 고행석가상, 항마성도상 (降魔成道像, 降鷹印), 최초설법상(轉法輪印), 경행상(經行像), 열반상 등이 있고, 회화의 독립된 주제로서는, 출산석가(出山―), 항마성도, 열반, 금관출현(金棺出現, 再生說法) 외에, 각종 석가설 법도(영취산 법화설상도 등)나 석가 중심의 군상도도 있고, 조상으로는 단독상 이외에 석가삼존상, 석가다보이불병좌상 등이 있다.
그러나, 상용 표현은 일반 불상과 다름 없고, 특이한 것으로는 보관불(寶冠佛)이 있을 정도이다. 인도의 불상 유품은 대개 석가상에 한정되고, 소승계의 남방 불교권에도 이와 같다. 한편 대승불교가 유통된 중국에서도, 대승의 제불(諸佛)과 함께 석가불의 조상(造像) 숭배는, 정도의 고하는 있을 망정 각 시대를 통하여 왕성했고, 다수의 조상(彫像), 화상(畫像)을 남겼다. 더욱, 우진왕(優塡王)의 전단서상(栴檀瑞像, 전설에서 말하는 부처 在世時의 최초 불상)에 대한 신앙과 조상도, 6~7세기 이후 중국에 유포되고 밀교(密教)에서는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에 석가존의 주존으로 배향되고, 또 석가존의 주존으로 건립되는 만다라에 석가 만다라 외에 보리장만다라(菩提場一), 보루각만다라(寶樓閣一), 청우경만다라(請雨經一), 법화만다라(法華一) 등이 있다.
출가와 성도
석가모니는 생후 7일에 어머니 마야부인과 사별하였다. 그것은 석가모니에게는 슬픈 일이었다. 그 후 이모에 의하여 양육되었는데, 왕족의 교양에 필요한 학문·기예를 배우며 성장하였다. 당시의 풍습에 따라 16세에 결혼하였다. 부인은 야쇼다라[耶輸陀羅]라고 하며, 곧 아들 라훌라[羅睺羅]도 얻었다.
이같이 안락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내던 중 석가모니는 인생의 밑바닥에 잠겨 있는 괴로움의 문제와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전설적으로 새가 벌레를 잡아 먹는 모습, 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사문(沙門)을 목격한 이른바 사문출유(四門出遊), 또는 사문유관(四門遊觀)으로써 설명된다.
석가모니는 29세 때 고(苦)의 본질 추구와 해탈(解脫)을 구하고자, 처자와 왕자의 지위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였다. 남쪽으로 내려가 갠지스 강(江)을 건너 마가다왕국(王國)의 왕사성(王舍城:Rājag ha)으로 갔다.
여기에서 알라라칼라마와 우다카 라마푸타라는 2명의 선인(仙人)을 차례로 찾아,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선정(禪定)을 배웠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통일에 의하여 하늘에 태어나 보려는 것이었는데, 석가모니는 그들의 방법으로써는 생사의 괴로움을 해탈할 수 없다고 깨닫자, 그들로부터 떠나 부다가야부근의 산림으로 들어갔다.
그는 당시의 출가자의 풍습이었던 고행(苦行)에 전념하였으나, 신체가 해골처럼 되었어도 해탈을 이룰 수는 없었다. 고행은 육체적인 면의 극소화를 통하여 정신의 독립을 구하는 이원적 극단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6년간의 고행 끝에 고행을 중단하고, 다시 보리수(菩提樹:Bodhi-tree) 아래에 자리잡고 깊은 사색에 정진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이 깨달음을 정각(正覺:abhisambodhi)이라고 한다.
그 깨달음의 내용에 대하여 《아함경(阿含經)》에는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사제(四諦:苦·集·滅·道의 4가지 진리, 즉 현상계의 괴로움과 그 원인 및 열반과 그에 이르는 길)·십이인연(十二因緣)·사선삼명(四禪三明) 등을 깨달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선정에 의하여 법(法:dharma)을 깨달았다고 하겠다. 즉 선정은 강렬한 마음의 집중이며, 여기에서 생긴 지혜는 신비적 직관(直觀)이 아니라 자유로운 여실지견(如實知見:있는 그대로 옳게 봄)이다.
이 지혜가 진리를 깨달아 진리와 일체가 되어 확고부동하게 되었는데, 공포에도 고통에도, 나아가서는 애욕에도 산란을 일으키지 않는 부동(不動)의 깨달음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마음이 번뇌의 속박에서 해방된 상태이기 때문에 해탈(解脫:moka)이라고 하며, 이 해탈한 마음에 의하여 깨우쳐진 진리를 열반(涅槃:nirvāa)이라고 한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해탈은 참 자유, 열반은 참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설법
석가모니는 성도 후 5주간을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의 기쁨에 잠겨 있었는데, 범천(梵天)의 간절한 권청(勸請)이 있어 설법을 결심하였다. 악마의 유혹, 설법주저(중생이 이해 못할 것을 염려), 범천권청 등은 마음속의 일을 희곡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보이나, 깊은 종교적 의미가 담겨 있다.
석가모니는 베나레스 교외의 녹야원(鹿野苑:M鹹gadāva)에서, 일찍이 고행을 같이 하였던 5명의 수행자에게 고락의 양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와 사제에 관하여 설하였다. 이것을 특히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모두 법을 깨달아 제자가 되었다. 여기에 최초의 불교 교단(sagha:僧伽)이 성립되었다.
이렇게 하여 불교는 그의 설법을 통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석가모니는 적극적으로 설법을 계속하여, 그 교화의 여행은 갠지스 강(江) 중류의 넓은 지역에까지 미쳤다. 제자의 수도 점차 증가하였으며, 각지에 교단이 조직되었다.
그의 가르침은 《아함경》《율장》 등의 원시불교 경전을 통해 전하여지고 있다. 구전(口傳)되어 오던 것을 후세에 편집한 것이지만, 후세에 정형화된 다음의 교설을 통하여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원형 또는 그 핵심을 알 수 있다.
삼법인(三法印:一切皆苦·諸行無常·諸法無我 또는 一切皆苦를 빼고 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사제·팔정도(八正道:正見·正思·正語·正業·正命·正精進·正念·正定)·무기(無記:일체의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답하지 않음. 실천을 지향함을 말한다) ·법(法:모든 존재를 일관하는 보편적 진리)·오온(五蘊:色·受·想·行·識의 5가지 존재의 구성 요소)·육근(六根:법의 분류로서 眼·耳·鼻·舌·身·意의 주체. 이에 대응하는 色·聲·香·味·觸·法의 객체, 즉 六境을 더한 十二處와, 거기에 眼識 등의 六식을 추가하여 十八界를 말하기도 한다)·연기(緣起:존재는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하여 성립함을 말함. 12연기가 특히 유명하다)·열반·일체중생의 평등 등이 그것이다.
입멸
혹서의 인도(印度)의 중부지역 각지를 45년의 긴 세월에 걸쳐 설법·교화를 계속한 석가모니는, 80세의 고령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의 중병에도 불구하고 교화(敎化) 여행을 계속하였다. 이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여러 가지 유언을 하였다고 한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하여 수행하라" 또한 자기가 죽은 뒤에 "교주(敎主)의 말은 끝났다. 우리의 교주는 없다고 생각하여서는 아니 된다. 내가 설한 교법(敎法)과 계율이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마침내 쿠시나가라(Kuśinagara)의 숲에 이르렀을 때, 석가모니는 심한 식중독을 일으켜 쇠진하였다. "나는 피로하구나. 이 두 사라수(沙羅樹) 사이에 머리가 북쪽으로 향하게 자리를 깔도록 하라"고 말하자, 제자들은 석가모니의 운명이 가까웠음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
석가모니는 "슬퍼하지 마라. 내가 언제나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하는 모든 것은 곧 헤어지지 않으면 아니 되느니라. 제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제행(諸行)은 필히 멸하여 없어지는 무상법(無常法)이니라. 그대들은 중단없이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니라"고 설한 후 눈을 감았다.
석가모니의 사후 그의 유해는 다비(茶毘:화장)되고, 그 유골[舍利:śarīra]은 중부 인도의 8부족에게 분배되어 사리탑에 분장(分藏)되었다. 이 사리탑은 중요한 예배대상으로 되어 후에 불탑신앙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대승(大乘)불교에서는 불타에 관한 철학적 고찰이 가해져 불타에는 법신(法身:진리로서의 불타)·보신(報身:보살의 願·行에 의하여 성취된 불타)·응신(應身:중생구제를 위하여 상대방에 상응하게 나타나는 불타)의 3신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석가모니불은 2,500여 년 전의 인도라고 하는 특정의 지역·시대에 나타난 응신의 불타로서, 시방삼세제불(十方三世諸佛)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신앙의 입장에서 석가모니불은 위의 3신을 모두 갖추고 있는 분으로 숭배되고 있다. 그의 탄생지 룸비니 동산, 성도지 부다가야, 최초의 설법지 녹야원(사르나트), 입멸지 쿠시나가라는 4대 영지(靈地)로서 중요한 순례지가 되고 있다.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부처님으로 불러왔다.
석가모니는 이 세상에 오기까지 많은 세월 동안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과 공덕을 쌓다가 슈도다나(정반)왕과 마야부인을 부모로 하여 태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바라문교육을 받았지만 세상일에 무상(無常)함을 느끼고 29세에 출가하여 6년간의 고행 끝에 마침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도(道)를 깨닫고 부처가 되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는 녹야원이라는 동산에서 다섯명의 비구 수행자에게 최초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 내용은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 세상 고통의 원인인 집착, 이를 벗어난 평화, 그리고 그에 이르는 방법에 관한 것 등이었다. 중부 인도 각지를 45년의 세월에 걸쳐 설법, 교화를 계속한 석가모니는 마침내 80세에 이르러 쿠시나가라의 숲에서 열반하였다. 석가모니를 모시는 전각을 대웅전, 대웅보전이라 한다.
여러 부처들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 되지만 손모양을 다르게 표현하여 부처들을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손의 모양을 수인(手印)이라고 하며, 모양에 따라 각기 구분한다. 석가모니불의 경우에는 선정인·항마촉지인·전법륜인·시무외인·여원인의 5가지 수인을 주로 취한다
석가모니의 탄생·성도·입멸의 월·일에 관하여 최고(最古)의 문헌에는 기록이 없으나, 중국·한국 등지에서는 탄생을 4월 8일, 성도를 12월 8일, 입멸을 2월 15일로 한다. 또한 남방불교에서는 탄생·성도·입멸이 모두 바이샤카월(Vaiśākha月:4∼5월)의 보름날의 일이라고 하여, 이 날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한다.
중국·한국 등지에서는 석가모니의 전기를 8시기로 구분하여 팔상(八相:兜率來儀相·毘藍降生相·四門遊觀相·踰城出家相·雪山修道相·樹下降魔相·鹿苑轉法相·雙林涅槃相)이라고 부르는데, 회화나 조각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참조항목
방광대장엄경, 법륜, 법신, 본생담, 불본행집경, 불족석, 비로자나불, 사문유관, 삼명육통, 삼시, 삼처전심, 성도재일, 10대 제자, 십력, 오교, 천상천하유아독존, 쿠시나가라, 부처님오신날, 8대 불교 성지
역참조항목
공휴일, 관불회, 석가, 열반회, 대한민국의 민속, 관불, 열반재일, 가비라위, 관음보살주경, 구난, 구류손불, 구원실성, 납팔죽, 사르나트
카테고리
종교> 불교> 의식 및 행사
생활> 행사> 명절 및 절기
출처 ^ 참고문헌
[네이버 지식백과] 부처님오신날 (두산백과)
[doopedia.co.kr
[미술대사전(인명편)
[석가 [釋迦, Sākyamuni]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석가 [釋迦] (두산백과)
[석가모니 [釋迦牟尼]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국의 불화),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뮤지엄
[불교성전』(동국대학교 역경원 편, 1981)
[불교개론』(이기영, 한국불교연구원, 1985)
[佛敎語大辭典』 (上)(中村元, 東京:東京書籍, 1975)
[불교입문』(정병조, 동쪽나라, 1995)
[석가모니불 [釋迦牟尼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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