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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산 , Mount Tai, 泰山, 태산.

타이산 , Mount Tai, 泰山(태산.

중국 산둥성() 중부 타이산 산맥의 주봉()으로 높이 1,532m, 총면적 426㎢이다. 중국의 5대 명산()의 하나인 동악()으로 신성하게 여겨졌다.

국가지정일분류소재지

중국(China)
1987년
복합
Spanning the cities of Taian and Jinan in central Shandong Province.

중국, 산동성의 산악(), 또는 그에 연결되는 산지. 노산 • 절산, 몽산의 산지와 함께 산동 중부의 산지를 구성한다. 그중에서도 태산이 가장 높으며 주봉인 천주봉은 표고 1545m. 산록지대는 안정된 자연경관을 가지며, 대문구문화, 용산문화 등의 신석기시대 유적도 많이 분포한다. 평단한 화북평원의 동쪽에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주목받았으며, 오악중의 동악으로서 대종(, 오악의 수봉)이라고도 불리었다. 고대 화북문화의 상징적 존재이며, 북록에는 제나라, 남록에는 노나라가 번영하였다.

 

천자가 행하는 최고의 의식인 봉선(, 천지의 제사)은 태산에서 행한다고 하며, 진의 시황제가 처음으로 실행했다. 이후 한의 무제, 후한의 광무제 • 장제, 당의 고종 • 현종, 송의 진종, 청의 강희제 등이 이를 모방했다. 동시에 산상산하에 당묘가 세워지고, 노암에는 글자가 조각되는 등 문인 흑객이 방문하는 명승지가 되었다. 이들 방문자가 남긴 시구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기경과 문화재가 함께 어울려서 천연의 역사박물관이 되어 현재도 유수한 관광지이다. 산하의 천황전은 송대에 세워진 궁전식 건축이며, 거기에서 산정에 이르기까지 흥문궁, 만선루, 병천각, 보조사, 천문 등의 명승이 있다.

 

중국의 오악()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산으로, 높이 1,532m이다. 타이산(태산)은 예로부터 중국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겼던 산이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선의식을 거행했다. 기원전 219년 진나라 시황제()를 시작으로 한나라 무제()를 포함 많은 황제들이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치렀다. 특히 한나라 무제는 5번, 청나라 건륭제는 11번이나 봉선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타이산에는 도교와 불교 사원과 특정인을 숭배하는 사당, 권세가들의 누각들이 들어섰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다이먀오()다. 다이먀오는 동악묘()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은 타이산의 신()인 태산부군을 모신 사당이다.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올렸던 곳으로, 특히 경내의 티엔황디엔(殿)은 북경 자금성(쯔진청)의 타이허디엔(殿), 취푸()에 있는 공자묘 안의 다청디엔(殿)과 함께 중국 3대 전각으로 꼽히는 곳이다. 1009년 송나라 때 처음 건축되었으며 높이 22m, 너비 49m의 크고 화려한 전각이다. 현재의 건물은 17세기에 재건한 것이지만 송나라 때의 거대한 벽화는 그대로 남아 있다. 
  

산 중턱에는 우숭팅()이 있다. 진시황(시황제)이 타이산을 오르다가 폭풍우를 만나자 그 아래서 비를 피했다는 소나무가 있었던 곳이다. 당시 시황제가 고마움의 표시로 소나무에게 오대부() 직위를 주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현재는 청나라 옹정제() 때 심은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산 정상에는 비샤시()라는 사당이 있다.

 

비샤위안쥔()이라는 여신을 모신 곳으로 11세기에 창건되었다. 이외에도 타이산에는 이티엔먼(), 중티엔먼(), 난티엔먼(), 다이쭝팡(), 훙먼궁(), 완셴러우() 등의 많은 명소가 있다. 산 곳곳의 암벽과 수백 개의 비석에 새겨진 글자와 경문이나 시문도 타이산의 명물이다.

타이산(태산)을 신성시하기는 일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타이산에 한번 오를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고 하여 누구나 타이산 등정을 평생의 숙원으로 삼을 정도였다. 때문에 이곳을 오르려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산 정상까지 7,412개의 돌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남중국해로 통하는 주장삼각주 서남쪽 끝에 위치하며, 홍콩의 서쪽으로부터 140㎞, 광저우의 서남쪽으로부터 100㎞, 마카오의 서쪽으로부터 80㎞ 떨어져 있다. 연평균온도는 21℃이고, 연강우량은 1,936㎜이다. 원래 명칭은 신닝현[]이었으나, 1914년 후난성과 쓰촨성에도 같은 이름의 지명이 있어 서로 혼동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행정구역은 현청 소재지인 타이청진[]을 비롯하여, 바이사[]·츠시[]·다장[]·두후[]·광하이[]·더우산[]·하이옌[]·나푸[]·싼바[]·싼허[]··선징[] 등의 20개 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텅스텐·비스무트연()·석탄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여 제철·농기구를 생산하는 공업이 발달하였고, 방직업도 활발하다. 총 140㎞에 달하는 고속도로가 건설되어 광저우까지 1시간 10분, 주하이까지 1시간 20분이면 닿는다. 타이산발전소가 건설되어 2003년 10월부터 가동되고 있다. 관광지로는 타이청진 북동쪽의 스화산[]과 서쪽의 시화산[西], 다룽둥[] 저수지, 상촨섬[]과 샤촨섬[] 등이 있다.

 

중국 산둥성 중부, 태안시의 북쪽에 있다. 표고 1545m. 고대의 성왕 순()이 5악 순찰 때 제일 먼저 태산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있어, 진 ∙ 한 이래 역대 천자가 하늘을 제사하는 봉선의 의()를 행했다. 진의 시황제가 28년(B.C. 219)에 봉선을 시도할 때, 가여가 통과하는 참도를 만들었다 하며 현재는 산정까지 7000여단의 석단이 이어져 있다. 또한 민간신앙에 있어서 태산의 신은 태산부군()이라 불리워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며, 죽은 사람의 영혼이 여기로 돌아와 생전의 행위의 선과 악을 재판받는다고 한다.

 

도교의 여러 신들 중 최고신인 옥황대제(원시천존)를 제사하는 옥황묘와 여신의 벽하원군을 제사하는 벽하사가 산정 가까이에 있다. 그외 동산구의 홍문으로부터 정상에 이르는 참도에 있는 만신루(1620), 두모궁, 호천각, 중천문, 남천문 등이 있으나 건축은 모두 명말 이후의 중수. 또한 100여개의 석비 ∙ 마애가 산중에 있고 시황제의 『태산각석』은 분실되었으나 경석곡에 있는 남북조시대의 『금강반야경』의 석경은 사방 30~40cm의 예서 약 2000자(1043자가 현존)로 이루어져 있어 『태산금강경』으로 유명. 그외 산정에 있는 당나라 현종의 『기태산명』(726), 조양동굴 부근에 있는 청나라 건륭제의 『만장비』 등 각 시대의 마애 ∙ 비명이 백여개에 이른다. 또한 태산은 도교의 본산으로 유명하다.

 

약 2000년 동안 황제의 숭배 대상이었던 성스러운 타이 산(, ‘shan’은 ‘산’의 의미)에서는 자연 경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예술 걸작들이 발견된다. 이 산은 중국 예술가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고대 중국 문명과 신앙을 상징한다.

 

신성한 타이 산의 장엄한 유적은 우거진 숲과 고대 사찰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의 2,000년 동안 중국인들의 순례지였던 이곳에서는 자연 경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예술 걸작들이 발견된다. 이 산은 중국 예술가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고대 중국 문명과 신앙을 상징한다.

 

산둥() 성 중부, 타이안() 시 바로 북쪽에 있는 타이 산은 산둥 지방 중부의 광활한 평원에 우뚝 솟아 있다. 타이 산의 지질은 중국 동부에서 캄브리아기(Cambrian period)를 대표하는 고대 변성암 체계 중에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타이 산 지질대로 일컫는 이곳의 지형은 2억 년~1억 7,000만 년 전의 시생대()에 형성된 화성암, 변성암, 퇴적암, 그리고 여러 가지 관입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뒤를 이어 원생대()에 시작된 타이 산 지역의 융기는 신생대() 중기까지 계속되었다. 타이 산 지역에 생겨난 편마암이 중국 북부 지역의 기반암을 이룬다.

빽빽하게 우거진 숲 지대의 80%를 차지하는 989종의 초목이 다양하게 자란다. 이 중에 약초가 총 462종이며, 마디풀(knotweed)과의 각종 풀, 타이산 인삼(Taishan ginseng), 중국지치(Chinese gromwell), 둥굴레(sealwort) 등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동물은 200종을 넘고 조류도 122종이나 된다. 300~800m에 이르는 유수()에서는 큰 물고기를 발견할 수 있다.

문화유산이 매우 풍부한 타이 산은 자연 경관과 함께 그 완전성에 있어서 귀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문화 유물에서는 기념물을 비롯하여 건축물, 암석 조형물, 고고학 유적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 문명 발상지 중에 하나인 타이 산에는 구석기 시대 이위안 원인(Yiyuan Man)이 400,000년 전에 활동한 흔적이 남아 있다. 6,000년~5,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타이 산은 북쪽의 다원커우 문화()와 남쪽의 룽산 문화()가 꽃을 피운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주() 왕조(기원전 1100~기원전 221)의 춘추 시대(, 기원전 770~기원전 476)에는 북쪽의 제()나라와 남쪽의 노()나라가 경쟁하면서 문화적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전국 시대(, 기원전 475~기원전 221)에는 제나라가 초()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여 500㎞에 이르는 긴 성벽을 쌓았다. 중국 역사상 최초인 이 거대한 성벽의 초기 흔적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다.

3,000여 년 동안, 중국 왕조의 황제들은 제물을 바치고 숭배 의식을 할 목적으로 타이 산을 순례하였다. 이곳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과 비문이 이를 증명한다. 저명한 학자들 중에 취푸(Qufu)가 고향인 공자(, 기원전 555~기원전 479)는 시와 산문을 지어 이 산에 남겨 놓았다. 취푸는 타이 산에서 70㎞ 거리밖에 안 된다.

타이 산은 도교와 불교의 주요 중심지였다. 기원전 351년에 랑(Lang)이라는 고승이 처음으로 이 산에 와서 영암사() 사원을 세웠다. 남북조() 시대(420~589)에는 옥천사(), ‘God's Treasure’ 보조사() 등이 건립되었다. 당(, 618~907)의 재상 리지푸(LiJiefu)는 영암사()를 중국의 경이로운 4대 사찰 중에 하나라고 하였다.

 

도교 사원으로는 서왕모(西)를 모시는 사원인 만선루(), 두모궁(), 벽하사(), ‘Rear Rock Basin Temple’ 그리고 옥황사() 등이 있다. 최초의 사원은 삼국시대(220~280) 이전에 건립된 만선루이고 벽하사는 중국의 절반 이상의 지역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다.

 

태산은 전설과 문화 속에 잠겨 있는 산이다. 판구( : 도교의 천지 창조 설화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의 창조 신화에 따르면, 판구가 죽자 그의 머리가 태산이 되었다고 한다. 도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5대 산 중 하나인 이 산은 불교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수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태산은 중국에서 가장 신성한 봉우리였으며, 고대 중국의 황제들은 이를 천제의 아들로 여겼다. 새로 자리에 오른 황제가 처음으로 하는 일 중 하나는 태산에 올라가 천상과 지상에 선조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일이었다. 기원전 6세기 공자가 태산에 올랐을 때, 그는 "세상은 작다"고 언명했다. 천 년 후, 마오쩌둥은 단언했다. "동쪽은 붉다."

태산의 높이는 해발 1,546m이며, 22채의 사찰, 97개의 옛터, 819개의 비석, 그리고 절벽과 바위에 새겨진 비문 1,018개가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옛사람들이 세상의 통치자라 믿었던 옥황상제의 옥황정()이 있다. 옥황정 앞에는 글자가 없는 비석인 무자비()가 서 있는데, 제안된 비문이 황제의 마음에 차지 않아 텅 빈 채로 남았다고 한다. 가장 크고 완벽한 건물은 진나라 때 처음으로 지어진, 태산의 산신전 대묘()이다. 출산과 새벽을 상징하는 도교의 여신 벽하원군()에게 바쳐진 '푸른 구름의 사찰' 역시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이다. 산으로 이르는 6,660개의 돌계단은 고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 중국 철학자인 궈 모뤄는 태산을 '중국 문화의 부분적인 축소판'이라 일컬었다. 고대 중국의 문명과 신앙을 상징하는 중요성으로 태산은 1987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태산 정상에 오르면 100세까지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안고 수많은 이들이 산길을 오르고 있다. 태산은 구름에 싸여 있을 때가 많지만, 등반객 중 많은 이들은 구름 위로 일출을 보려는 희망을 품는다.

 

태산부군,중국 태산(타이산산)에 산다는 신().

부군이란 관청 장관()을 뜻하지만 이 경우의 부()는 명부(), 즉 죽은 자를 다스리는 관청을 뜻한다. 태산은 예부터 명산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진()의 시황제()와, 한()의 무제()가 이 산에 올라 봉선()의 제()를 올린 뒤부터는 한층 신비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태산이 언제부터 명부로 믿어지게 되었는가는 분명하지 않다.

 

후한()시대에 들어와 이 같은 종류의 신앙이 성립된 사실을 증명하는 문헌이 비로소 나타난다. 《효경위원신계()》에 “태산은 예부터 천손()이라고 일컫는다. 천제()의 손자임을 뜻하며 인간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일을 관장한다.

 

동방()은 만물이 처음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의 길고 짧음을 안다”고 되어 있고, 《풍속통()》에도 태산에 천하 사람들의 수명을 적어 넣은 표찰이 금으로 만든 상자 속에 수장되어 있다는 전설을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 한대()의 고시()나 《후한서()》 《위지()》 등에도 태산이 사자가 모이는 명부임을 기술한 대목이 보인다. 다만 태산부군이라는 신의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는 진()나라 간보()의 《수신기()》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 후 도교()의 신으로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일명 동악대제()로도 불리기에 이르러 각지에 동악묘()가 서게 되었다.

 

음양사가 행하는 제사의 하나. 태산부군은 중국 고대부터의 신인데, 불교의 염라대왕과 습합해서 인간의 수명과 복록을 지배하고, 그 사자 사명신이 명부의 호적을 관리한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