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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修德寺 ],

수덕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말에 창건된 사찰.

위치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사천리19~20)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원의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백제말에 숭제법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우리나라 4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이 있다.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 수덕사, 
  • 지번사천리 19/ 20 수덕사 지도보기

T: 041-330-7700   

http://www.sudeoksa.com/

수덕사는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승격된 후 1984년에 종합수도장을 겸비한 덕숭총림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총림의 뜻은 범어 vindhyavana의 번역으로 빈타파나라 음역하며, 단림이라고도 번역합니다. 총림이란 승속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르는 것이며, 특히 선찰의 경우 이름으로 공덕총림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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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수덕사: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충남 일원의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백제말에 숭제법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우리나라 4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이 있다.

수덕사 대웅전

종파/ 창건/ 시기/ 창건자/ 소재지

대한불교 조계종
백제 위덕왕 때
지명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79(사천리 20) 지도

문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없지만, 백제 위덕왕(:554~597) 때 고승 지명이 처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제30대 왕 무왕() 때 혜현()이 《묘법연화경()》을 강설하여 이름이 높았으며, 고려 제31대 왕 공민왕 때 나옹(:혜근)이 중수하였다. 일설에는 599년(신라 진평왕 21)에 지명()이 창건하고 원효()가 중수하였다고도 전한다. 조선시대 제26대 왕 고종() 2년(1865)에 만공(滿)이 중창한 후로 선종() 유일의 근본도량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가운데 봉정사 극락전(殿, 국보 15))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殿, 국보 18)에 이어 오래된 건축물로서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양 옆에는 승려들의 수도장인 백련당()과 청련당()이 있고, 앞에는 조인정사()와 3층석탑(충남유형문화재 103)이 있다. 그리고 1,020계단을 따라 미륵불입상()·만공탑·금선대()·진영각() 등이 있고, 그 위에 만공이 참선도량으로 세운 정혜사()가 있다.

부속 암자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인 견성암()과 비구니 김일엽()이 기거했던 환희대()가 있으며, 선수암()·극락암 등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특히 견성암에는 비구니들이 참선 정진하는 덕숭총림()이 설립되어 있다. 그밖에 주요 문화재로는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보물 1263),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1381), 수덕사칠층석탑(충남문화재자료 181), 수덕사유물(거문고, 충남문화재자료 192), 수덕사 소장 소조불상좌상(충남문화재자료 384) 등이 있다.

해진 수덕사,
눈온 수덕사 전경,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사기()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 제30대 무왕 때 혜현()이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599년(법왕 1)에 지명법사()가 창건하였고 원효()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상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한말에 경허()가 이곳에 머물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고, 1898년(광무 2)에 경허의 제자 만공(滿)이 중창한 뒤 이 절에 머물면서 많은 후학들을 배출하였다.

우리나라 4대 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국보 제49호)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殿)을 비롯한 백련당()‧청련당()‧염화실()‧조인정사()‧무이당()‧심우당()‧황하정루()‧천왕문‧금강문‧일주문()‧범종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1308년(충렬왕 34)에 건립된 건물로서 건축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대웅전 안에는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불, 아미타불의 삼세불이 모셔져 있다. 이 목조삼세불좌상(보물 제1381호)은 만공이 전라북도 남원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여래탑이라고도 불리는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이 있으며, 1936년 대웅전 중수 때 발견된 벽화는 건립 당시의 것으로서 주악공양비천도()‧수화도()‧야화도()‧금룡도()‧오선도()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까래에 희미하게 금룡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일주문은 도톰하게 깎은 돌기둥 두 개에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덕숭산수덕사()’라고 쓴 현판은 손재형()의 글씨이며, 지붕의 처마에는 붉은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되어 있다. 범종각에는 1973년에 조성된 무게 6,500근의 종이 봉안되어 있다.

이 절의 산내암자로는 정혜사()를 비롯하여 견성암()‧금선대()‧환희대() 등이 있다. 현재 이 절의 말사는 66개이다.

이 가운데 정혜사에는 비구 선원인 능인선원()이 있으며, 견성암에는 비구니 선원인 제일선원()이 있다. 또 금선대에는 진영각()이 있으며, 진영각 안에는 만공의 영정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환희대는 『청춘을 불사르고』를 지은 김일엽()이 기거하다가 죽은 곳이며, 견성암 또한 김일엽이 기거하던 곳이다.

이밖에 이 절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로는 노사나불괘불탱(, 보물 제1263호), 만공탑(滿,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1호), 칠층석탑(예산군 문화재자료 제181호), 근역성보관(槿)에 소장된 거문고(예산군 문화재자료 제192호) 등이 있다.

노사나불괘불탱은 1673년(현종 14)에 제작된 괘불로서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형식의 그림이다.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으로 처리하여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만공탑은 만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제자들이 세운 탑으로서 구형()의 둥근 돌이 올려져 있는 특이한 부도이다.

조인정사 앞에 세워진 칠층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든 탑으로서 지대석 위에 기단 면석 외부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하고 있는데 면석에는 두께 10㎝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기단 위에 탑신부의 옥신은 없는데, 그 대신 4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옥개석을 받치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근역성보관(槿)에 소장되어 있는 거문고는 만공이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으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이 거문고에는 이조묵()이 새긴 공민왕금() 이라는 글씨와 함께 만공의 시가 새겨져 있다.

수덕사는 한국 불교를 해외에 알리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였던 숭산(, 1927∼2004)이 1949년 고봉()에게 비구계를 받은 사찰이기도 하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고 낮은 구릉과 평탄한 들녘이 서로 이어지며 계곡이 골마다 흘러내리는 이곳은 옛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어 졌으며 이곳에 불조의 선맥이 면면히 계승되고 많은 고승석덕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선지종찰 수덕사가 자리잡고 있다.

백제사찰인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에 창건된 것으로 학계에서 추정하고 있으며 또한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와당은 백제시대 창건설을 방증하고 있다. 백제 무왕때도 (600~641년) 혜현법사가 강론하고 고려 공민왕때 나옹화상이 중건하였다하며 조선시대 고종 2년(1865년)에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우리나라 선종의 수도장으로 유명하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49호 (’62. 12. 31)로 지정되었으며 고려 충렬왕(1308년)건립된 목조 건축물로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과 주심포 계풍의 건물이며 충청남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03호인 수덕사 3층 석탑과 충청남도지정 문화재자료 제181호인 수덕사 7층석탑이 있으며 보물 제1263호로 지정된 노사나 괘불과 음률공양비천도, 수화도, 야화도, 금룡도 (이상 고려시대 벽화), 오불도(조선시대)등의 벽화가 유명하나 전쟁시 소실되고 현재 모조품만이 국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또한 경내에는 정혜사, 전월사, 금선대, 향운각, 소립초당, 견성암, 환희대, 만월당, 선수암, 운수암, 극락암등이 산제 되어있다.

수덕사에는 세계일화를 바탕으로 하여 민족정신문화의 모음처라는 의미의 근역성보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불교 정보를 수집·조사·보존·전시함으로써 유물에 대한 체계적인 자료의 축적과 더불어 불교문화의 이해와 가치 재인식의 장을 마련하고 있으며 본·말사내 백제시제부터 시작된 이 지역 불교의 원류와 시대에 따른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불교문화재 600여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수덕사는 완만한 덕숭산의 구릉을 따라 삼단과 석축을 쌓고 가장 위쪽에 대웅전을 배치한 전형적인 산지형 가람으로 도입·전개·결과의 연속성과 상승효과를 통한 대웅전을 강조하고 있다. 도입부는 속세로부터 사찰로 들어서는 일주문화 황하정루이고 전개부는 시계의 갑작스런 변화를 유도하며 시선을 집중시키는 조인정사까지이며 결말부는 핵심공간으로 역할과 기능을 강조하는 대웅전이며 동선의 배치와 뛰어난 구조미로 완성된다.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수덕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삼세불상 3구. 보물 제1381호.

 

수덕사 전경:  덕숭산 밑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수덕사는 한말 선종을 중흥시킨 대선사 경허와 그의 제자 만공이 머물며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덕숭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수덕사는 백제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뚜렷한 기록은 없으며 고려 말 공민왕 때에 나옹이 중수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 시절인 19세기에조차도 가야산의 가야사보다 사세가 작았던 듯도 하다. 그러다가 한말에 경허()가 머물며 선풍()을 크게 일으키고 그 제자 만공(滿)이 중창하여 지금은 우리나라 불교계 4대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이 있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황하루로 오르는 긴 계단이 나 있다. 그러나 계단을 통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흙길을 따라 올라가면, 1995년부터 중창 불사해 최근에 완공한 황하루 건물을 볼 수 있는데 대웅전을 본뜬 모습이다. 옛 건물을 따랐으나 이전의 멋스러움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것은 세월의 무게가 실리지 못한 탓일까? 황하루 뒤쪽으로는 돌계단이 엉거주춤 걸려 있어 위태해 보이기도 하고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불사 이전의 아늑함이야 못 살리겠지만 제대로 자리 잡힌 모습이라도 빨리 되찾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수덕사 가람배치도,

둔덕을 올라 마주하는 조인정사 앞에는 통일신라 때의 균형있는 비례를 갖춘 삼층석탑이 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03호인 이 탑은 비례가 깔끔하여 여느 절이라면 꽤 대접을 받았겠으나 수덕사에서는 말없이 서 있다.

선방을 끼고 돌아가면 기품 있는 대웅전이 있다. 경내에는 그밖에도 명부전, 백련당, 청련당 들이 있다. 그러나 수덕사는 부속암자와 당우가 많은 편이다. 일제 시대에 신여성으로 화려한 삶을 누리다가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책을 썼던 김원주가 일엽 스님이 되어 수도하던 견성암과 환희대가 있고, 만공이 기거하던 금선대도 있다. 이 금선대에는 지금 경허와 만공의 영정이 있다. 또 정혜사로 오르는 중간쯤에는 1924년에 만공이 세운 미륵불입상이 있는데 7m가 넘는 거대한 체구에 굵은 기둥처럼 몸체를 새긴 것 하며 머리에 보관을 쓰고 갓을 얹은 품이 논산 관촉사의 미륵상 이래로 내려오는 충청남도 지역의 고려 시대 석불의 계보를 밟고 있다. 불상으로서의 위엄이나 우아함보다는 구김없이 웃고 있는 모습이 미륵상을 건립한 만공 스님의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그대로 전파하는 듯하다.

미륵보살입상:  정혜사로 오르는 중간쯤에는 1924년 만공이 세운 7m가 넘는 거대한 미륵보살입상이 서 있다.

가까이 있는 만공탑은 만공 스님의 부도이다. 팔각기단에 팔각기둥 셋을 받치고 그 위에 둥근 공 모양의 몸돌을 얹은 이 부도는 만공 스님의 제자인 동경미술학교 출신 박중은이 1947년에 세운 현대식 부도이다.

교통, 숙식 등 여행에 필요한 기초 정보,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다. 충의사에서 45번 국도를 따라 해미 쪽으로 300m 정도 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 길은 해미로 이어지는 45번 국도이고, 왼쪽 길은 수덕사로 가는 622번 지방도로이다. 이곳에서 622번 지방도로를 따라 4㎞ 가면 길 오른쪽에 수덕사 안내표지판이 있고 이 길을 따라 0.5㎞ 가면 수덕사 입구 주차장에 이른다.

수덕사 일주문 앞 매표소 바로 못미처 왼쪽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고암 이응로의 암각화가 있는 수덕여관이 있다. 수덕사 주변에는 숙식할 곳이 많이 있다. 덕산(예산)에서 30~40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알찬 답사, 즐거운 여행을 도와주는 유익한 정보

덕숭산은 해발 495m의 높지 않은 산이다. 더욱이 수덕사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수덕사에서 덕숭산 정상을 오르는 데는 큰 부담이 없다. 수덕사→정혜사→덕숭산 정상으로 오르면 홍성 일대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대웅전

대웅전은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남향하여 앉아 있다. 장대석을 쌓아 이룬 축대 위에 의젓하게 앉은 이 건물은 1308년에 세워진 것으로,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오래 된 건물이다. 1937년에 해체 수리를 할 때 중수년대가 적힌 붓글씨가 발견되어 이 건물의 나이를 알게 되었다. 건립년대가 분명하여 우리나라 고건축의 기준이 되며 그 역사성과 아름다움으로 하여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정면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오래 된 건물이다. 건립년대가 뚜렷하여 우리나라 고건축의 기준이 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다른 건물이 정면이 더 넓은 것과는 수효 면에서 다르다. 그러나 건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면은 한 칸에 문짝이 셋이나 달리도록 칸살이 넓고 옆면은 칸살이 매우 좁다. 그래도 대웅전은 비교적 정사각형에 가까운 편이다. 이처럼 정면 칸살이 넓은 것은 들이 넓어 개방적인 충청남도 지역 건축의 한 특성이다.

일제 시대 때의 대웅전  현재 대웅전의 수리 전 모습이다. 측면에 풍판이 달려 있다.

이 건물이 고식을 보여 주는 특징 하나는 기둥이 뚜렷한 배흘림을 하고 있는 점이다. 대웅전 옆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고주()를 보면 그 특징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또 한 가지는 공포 구성이 주심포라는 점이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두어 지붕의 무게를 받는 주심포 양식은 화려하지 않은 건물에 썼으며 고려 시대, 조선 초기 건물에 주로 남아 있다. 공포가 단순하지만 이 건물은 11량이나 되어 지붕이 큰 편이며 그러므로 맞배지붕으로 엄정하게 처리했다. 맞배지붕과 11량의 아름다움은 옆에서 보면 잘 드러난다.

대웅전 옆면 지붕의 무게가 기둥에 골고루 분산하여 전달되도록 짠 각종 부재들이 구조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장식적인 기능을 더해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창방 위쪽 기둥머리에는 파련 모양의 받침을 달아서 항아리 모양의 충량을 받았으며 그 위에 다시 파련대공을 얹어 고주가 받고 있는 가로부재를 받게 했다. 그 위에 지붕의 무게를 받는 우미량이 있다. 이런 모든 장치는 지붕의 무게가 기둥에 골고루 분산하여 전달되도록 고안된 것이면서도 드러나는 면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도록 정교하게 치장되었다. 그러면서 가로선과 세로선, 대각선이 빚어 내는 세모와 네모의 비례가 황금비례를 이루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고려 시대에는 벽화로 화려하게 치장했을 벽면에는 단순하게 노란 칠이 되어 있어 부재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 우미량이나 파련대공의 우아한 곡선은 이 건물이 백제계 건축의 맛을 간직하고 있는 점이다.

지금은 마루가 덮여 있으나 고려 때의 건물들이 그렇듯이 원래는 전돌이 깔려 있었다.

대웅전 옆면 구조,

기둥위 수직선상에 놓여 건물의 정면과 뒷면을 가로지르는 부재를 보라고 하며, 보의 직각 방향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를 건너지르는 굵은 재목을 도리라 한다. 도리는 위치에 따라 종도리, 중도리, 주심도리, 내목도리, 외목도리라 부르는데 종도리는 건물의 최상부에 있는 부재로서 용마루 받침재이다.

대웅전 벽화,

대웅전 부재들 사이에 예전에는 작은 벽화가 있어 장엄에 큰 몫을 했다. 1937년 수리 때에 공양한 꽃꽂이, 작은 부처와 나한들, 극락조, 악기를 타는 비천 등 많은 벽화들이 발견되어 사람들을 찬탄하게 했다. 악기를 타는 비천은 풍만한 얼굴에 섬세한 이목구비와 손, 유연한 자태와 힘차게 펄럭이는 옷자락 등이 매우 생동하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었으며 꽃꽂이 그림은 수반처럼 생긴 도자기에 홍련, 백련과 여러 야생화가 한아름 소담스럽게 꽂혀 있는 사실적인 그림으로서 고려 벽화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수리할 때에 떼어놔 두었던 벽화가 한국전쟁 때에 부서져 버려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불행중 다행인지 모사한 그림 몇 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대웅전벽화,

고려 시대 벽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수리할 때 떼어 놓았던 것이 한국전쟁 때 부서져 버렸다. 사진은 일제 시대 때 찍은 것이다.

### 본 정보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여행 시에는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버스

  • 서울(남부T) → 예산터미널(07:20-19:05,4회/일,2시간10분소요)
  • 대전(동부T) → 예산터미널(07:00-19:00,12회/일,1시간50분소요)
  • 대전(서부T) → 예산터미널(06:51-19:03,25회/일,2시간소요)

기차

  • 용산역 → 예산역(05:30~20:445, 16회/일, 2시간소요)
  • 용산역 → 신례원역(05:30~19:35,11회/일,1시간50분소요)
  • KTX(용산역) → 천안,아산역(05:20~20:30)13회/일,37분소요)
  • 수도권전철1호선(서울) → 신창역(06:50~22:27,41회/1일,2시간20분소요)

자가용

  • 서울 → 서해안고속도로 → 대전당진간고속도로 → 예산.수덕사IC → 예산 → 국도45호 → 지방도622호 → 수덕사
  • 대전 → 유성IC → 대전.당진간고속도로 → 예산.수덕사IC → 예산 → 국도45호 → 지방도622호 → 수덕사
  • 부산 → 경부고속도로 → 대전외곽순환도로 → 대전.당진간고속도로 → 예산수덕사I·C → 예산 → 국도 45호 → 지방도622호 → 수덕사
  • 광주 → 서해안고속도로 → 해미IC → 국도45호 → 덕산온천지구 → 지방도622호 → 수덕사

현지교통, 수덕사 찾아가는 길,

국도 45호선 22㎞ 진행 후 지방도 622호선 5㎞ 진행.

주변 대중교통 (지하철, 버스)

  • A.수덕사

    •  

      290 291 390 395 510 511 547 549 551 552 553 555 556 557 558 578 990 991

    B.수덕고개

    • 547 549 551 553 555 557 558 578 990 991

  • C.수덕고개

    • 510 511 549 552 556 558 990 991

  • 예산T → 수덕사(06:25-19:00, 10회/일, 45분소요)

 

산채더덕정식(덕산면 사천리 수덕사일원)

  • 우리식당 (041)337-5737)
  • 그때그집 (041)337-6633)
  • 길손식당 (041)337-6017)
  • 수덕사버들식당 (041)337-6056)
  • 별미식당 (041)337-6363)
  • 수덕골미락식당 (041)337-6241)
  • 수덕사도식후경 (041)337-3330)
  • 오복식당 (041)337-6110)
  • 수덕식당 (041)337-6019)
  • 민속촌 (041)337-0500

음식점 전체보기

 

덕산스파캐슬

  • 041)330-8000
  • 객실/ 407실/ 부대시설/ 천천향/ 세미나/ 연회장/ 주차공간/ 469대

덕산온천관광호텔

  • 041)338-5000
  • 객실/62실/ 부대시설/ 한식당/ 온천탕/ 주차공간/ 200대

세심천온천호텔

  • 041)338-9000
  • 객실/한실31실/ 양실13실/ 부대시설/ 온천탕/ 주차공간/ 150대

가야관광호텔

  • 041)337-0101
  • 객실/48실/ 부대시설/ 한,양식당운영/ 온천탕/ 주차공간/ 100대

숙박 전체보기

참조항목,

덕산면, 예산 수덕사 대웅전, 수덕사 벽화, 수덕사 노사나불괘불탱, 수덕사 삼층석탑, 수덕사 칠층석탑, 수덕사 유물,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수덕사 소장 소조불상좌상

역참조항목,

개심사, 대한불교조계종, 덕산도립공원, 덕숭산, 백제미술, 25교구본사, 총림

카테고리,

 

 

『덕숭산수덕사(德崇山修德寺)』(불교성보문화연구소, 1998)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攬)-사찰편(寺刹篇)-』(충청남도, 1990)

『한국의 명산대찰(名山大刹)』(國際佛敎徒協議會, 1982)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權相老 編, 東國大學校 出版部, 1979)

수덕사 홈페이지(http://www.sudeoksa.com)]

[네이버 지식백과] 수덕사 [修德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수덕사 (답사여행의 길잡이 4 - 충남, 초판 1995., 20쇄 2012., 한국문화유산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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